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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만수초등학교 운동회

by 박카쓰 2008. 7. 11.
                                                   가을 운동회


                                 
  드높은 파란 가을 하늘에 하아얀 새털구름을 보면 어린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다. 추석날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날이면 으레 운동회가 열렸는데 고향을 떠난 사람까지도 모두들 이 날을 기다렸다.
 
  비가 오면 어쩌나 밤잠을 설치지만 운동회 날의 하늘은 언제나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왔다. 근 한달 간 운동장에서 연습하느랴 검게 탄 얼굴을 한 결전의 용사들이 이 동네, 저 골짜기에서 지지직 거리는 확성기의 큰 노랫소리를 들으며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으로 몰려든다.
 
  내가 처음으로 출전하는 종목! 달리기! 달리기 출발선 앞에선 나의 가슴은 새처럼 파닥거리고 이윽고 탕! 늘 꼴찌만 하던 나도 올해엔 뭔가 보여주겠다고 의지를 불태워보지만 별 수 있나. 가지나 전날이 명절날이라고 안 먹던 고기와 부칭개를 먹었더니 힘줄 때마다 방귀는 삑, 삑 나오고 하마터면 그것(?)까지 나올려 하네.
  이제 시장 끼를 느끼지만 먹을 것을 가지고 운동장 어디인가에 기다리실 엄마를 찾아 갈 것을 생각하면 배고픈 줄도 모른다. 전날 먹다 남은 떡이며 송편이며 모두 싸 가지고 와서 온 가족, 마을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엄마, 나 사탕 사먹고 싶은데..." " 얘, 여기 먹을 꺼 천지다. 뭘 사 먹냐?" 그래도 몇 푼 얻어 꽈배기며 눈깔사탕을 사먹을 때면 저쪽 천막속의 커다란 솥 속에 대파와 기름이 둥둥 떠 끓고 있는 장국밥이 뭐 그리 부러우랴.
    
  오후 들어 이젠 우리의 멋진 모습을 보여줄 시간! 그간 얼마나 땀흘리며 고생하였던가? 곤봉체조를 하다가 곤봉자루로 대가리를 얻어맞아 밤톨만한 혹이 어디 한 두 군데이며 덤블링하다가 목이 쉬지 않은 얘들이 거의 없었고 선착순, 갖가지 기합은 그때 다 터득하였노라. 그래, 오늘만 지나거라. 이 지긋지긋한 운동회 !! 이제 오늘의 백미, 기마전! 청군, 백군이 계백 결사대인양 전쟁터를 방불케 하며 꼬맹이들의 눈은 승부욕으로 이글거린다.
 
 해는 뉘엿뉘엿, 올해에도 재끼장(잡기장?) 한 권 못 타나 걱정하던 터에 운 좋게도 우리 청군이 이겨서 한 권을 타게 되었는데 술 취하신 아버지한테는 "뜀박질해서 탓어유." "그래, 그래, 우리 아들, 장하다."

 

  이제 그날의 함성은 이젠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나온 세월만큼의 거리 때문에 유심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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