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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타이어표 검정고무신

by 박카쓰 2008. 7. 11.

타이어표 검정고무신

 

조치원 장날 아버지가 '동양타이어'표 검정 고무신을 사오시던 날 밤 내일 학교에 가서 새 고무신을 자랑할 생각에 잠이 오지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새 신을 신고 학교까지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새 신을 다락에 넣어두고 못 신고 가게 하신다.  그 이유는 새신발이 발에 딱 맞아 앞으로 2~3년은 더 신어야 하는데 다음 장날 더 큰 것으로 바꾸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울며불며 애원해 보았지만 한사코 신발을 내주지 않고 신고있던 낡은 신 신고 학교만 빨리 가라 신다. 

    골이 난 나는 신발을 훔쳐 집밖으로 내달리려는 순간 아버지한테 들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8살 꼬마 녀석이 달려 보았자 거기지 하는 수 없이 논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논에는 모내기를 하려고 쓰려놓아 한강 물처럼 불어나 내 배꼽까지 물이 차 올랐다. 아버지는 어른 체면에 논 한 가운데까지 좇아 올 순 없고 나는 그 속에서 펑평 울면서 띵깡을 부렸다. 새 신을 신게 해달라고...
   

  아버지는 창피하셨는지 집으로 들어가시고 난 서둘러 학교로 달려가 보았지만 벌써 수업이 시작되었는지  교실마다 글 읽는 소리만 들린다. 우리 반 교실 창 밖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누가라도 "선생님! ○○이, 밖에 있어요."라고 불러주면 오죽 좋았겠지만... 아무도 못보았는지... 한참후 배짱이 없는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족히 3Km가 넘었는데 산 고갯길을 두 개를 넘어야 했고 다 자란 노란 호밀 밭을 지날 땐 문둥이가 숨어 있다가 내 간을 빼먹으려고 금방이라도 달려나올 것 같던 그 길을, 무서워서 울고 학교 못 가 울고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돌아오는 길 장작골 밭에서 엄마가 마침 비가 온 후라 고구마를 심고 계셨다. 엄마는 눈물로 찌든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안됐는지 학교에 다시 가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고구마 줄기를 엄마 손에다 하나씩 놓아 달랬다.  "엄마, 다음 장날 이 신발 바꿔오면 안될까?" "이젠 안 되지. 고무신 바닥이 조금이라도 닳았는데 누가 바꾸어 주겠니?"     


  5년 후 난 국민학교 졸업식장에서 6년 정근상 밖에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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