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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또 하나의 고향, 마누실 고모네집...

by 박카쓰 2012. 10. 23.

어제 마누실 고모네집 *식형님한테 결혼 청첩장을 받아들고 정말로 반가웠다. 아, 내 예전 마음의 고향이 또 하나 있었지늘 살갑게 대해주시던 고모님 내외분, 고종사촌 여러형님들, 영* 동생도...

 

받아든 번호를 들고 얼릉 영*동생과 통화를 하고 나니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 옛날 추억속의 이야기들...내가 그간 새까맣게 잊고 살았었구나. 내 마음의 고향을...

 

 충남 천원군 전동면 영당리 마누실에 내 고모네집이 있었다. 오늘 새벽은 그 아스라한 이야기나 해볼까한다. 나에게는 아버님이 오창에서 양자로 오셔서 고모님이 무려 여섯분이나 계시다. 친할아버님에게서 세 고모님이 지금도 모두 생존해 계시고 양할아버님에게서 이웃동네 남촌말, 오창 강당말, 그리고 전의 마누실 고모 그 세 고모님댁중에서는 막내셨던 마누실고모댁이 살기는 좀 나으셨던 것같다.

 

내가 전의 고모님댁을 처음 간 것은 *식형을 따라 그 형님이 고딩 3학년이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조치원에서 버스를 타고 전의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긴 신작로길이 어찌나 먼~지 영당리에 다 왔다 했더니만  신작로에서 좁은 마차길을 따라 산속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했다.

 

그리고 당도한 마누실...이미 해는 져서 산 그림자가 어둡게 두리워져있었다. 집집마다 저녁을 짓느랴 불을 피워 그 연기가 하늘을 온통 뒤덮고 지금 생각하면 전쟁영화 '동막골' 세트장 같은 풍광이었다.

 

그 후 두서너번 더 다녀온 기억이 있다. 고모댁 윗쪽엔 고모부님의 삼촌, 아랫집은 동생네 댁으로 온 동네가 정씨들 못자리판이었다. *탁형 친구들따라 우리동네와는 다른 물고기였던 중태기(?)도 잡고 산비탈에 있는 고모님댁 담배밭에서 담배를 따서 실어나르기도 하고 쉴 틈이면 마루에 우수수, 감자 등 먹거리가 쏟아져 나왔었다.

 

내가 마누실 고모네댁을 좋아한 이유는 함께 놀아주는 *식형님, *탁형, 그리고 이쁜 여동생 영*이도 있어서였다. 영당리 둘째형님네도 들렸고 전의사셨던 큰형님댁에서 토끼도 잡아먹은 기억이 있다미자(?) 딸 부자집...작년 그 형님이 돌아가신 걸 알고 무척 안타까웠다. 

 

대학생일때는 고향친구 *백이와 술이 잔뜩 취해 경운기를 몰고 거기까지 갔으니 객기도 보통 객기가 아니었다결국 고모부 내외분한테 조카 술 취한 꼴 보여드린 것이 그 후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내가 1984년 결혼을 한 후 집사람과 고모님한테 인사드리려고 그곳에도 또 갔었다조카 며느리라고 그렇게 반가워하시고 내 친정조카라면 뭐든지 내어주시던 우리고모님이셨다.

 

~ 그 전에 내 초등학교때였다. 고모님과 조치원 장에 나왔다가 내 수영복을 사주셨다주황색 나이롱 소재 짧은 팬티였는데 그런 팬티를 입은 사람이 온동네에서 내가 처음이라 여학생들한테 속이 보인다나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ㅋㅋ

 

내가 고모댁을 다녀오면서 여러 감회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속에 남는 것은 고모부님 형제자매, 그리고 고종사촌 남매들, 모두 7남매로 기억되는데 그 우애가 어찌나 돈독한지 참 놀라웠다. 우리집은 아버지 형제, 사촌끼리 술드시고 다투시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고모님댁에서 배웠지. 나도 커면 저렇게 형제간 화기애애하게 살겠다고. 자랑이지만 우리집 4남매는 최근 십년 넘게 말다툼 한번 한적없다.

 

인생지사는 생로병사했지. 인자하시고 깔끔하였던 고모부님은 홀연히 세상을 하직하셔 조문도 못가보았고 고모님은 천안으로 두어번 병상을 찾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내 아버님도 중환이 들어 하루하루 주사와 약으로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시기 3일전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시다고 고향으로 모시던 날 마누실 고모님이 별세하셨다고 연락이 왔다~남매가 3일 사이로 돌아가시는 구나!

 

그게 벌써 1996년 여름이니 벌써 16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아버지 형제자매도 부모님 돌아가시니 자연 소원해지게 마련인가보다. 그래도 고종사촌들, 조카들 어찌 사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언제 다시 만나 이렇게 많은 추억의 보따리를 다시금 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