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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뒤뜰 감나무를 바라보며...

by 박카쓰 2009. 11. 2.

 

 

뒤뜰 감나무를 바라보며

 

  

 엊그제 고향집에 들렸더니 뒤뜰 감나무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늦가을이면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발그레한 감을 딸 때 즐겁기만 했던 지나간 가을날이 그리워진다.

  오뉴월 모내기철이면 어김없이 노르스름한 감 꽃이 피었다가 뒤뜰에 질 때면 우리는 그 꽃을 주어 먹기도 하고 실에 꼬여 꽃 목걸이를 만들어 엄마의 목에 걸어주며 즐거워했다. 여름철 번개와 천둥이 치며 심하게 바람이 불던 밤이면 잠을 설치다가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남보다 일찍 일어나 감나무 밑에 떨어진 익지 않은 땡감을 주어 소금물 속에 얼마쯤 넣어두었다가 떫은맛을 삭힐려고 울구어서 먹곤 했었다.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면서 무렵 수줍은 복순이 볼 같은 감이 그렁그렁 익어간다. 어쩌다 빨갛게 익은 홍시를 보면 침을 삼키다가 주인 모르게 그 홍시를 따먹으러 감나무에 올라가 닿을 듯 말 듯 쬐끔만! 쬐끔만! 하고 가느다란 감나무가지로 더 나아가다 감나무가 부러져 떨어질 뻔한 적이 왕왕 있었고 그 감이 맛있어 많이 먹던 날엔 똥구멍이 막혀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나가고 서리가 서너 차례 내리면 감이 물러져서 약간 타박하면서도 달콤한 감칠맛이 날 때면 온 식구가 함께 주렁주렁 달린 빨간 감을 딴다. 아버지는 나무에 올라가 망태기를 가지에 걸어두고 손에 닿는 감은 그 안에 따 넣으시고, 손이 미치지 못하는 감은 장대나무의 끝을 벌려서 고무줄로 댕댕 졸라맨 다음 그것을 감 가지에 끼워 비틀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아래로 내려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감을 받아서 소쿠리에 담아 넣으며 즐거워했고 아버지는 그래도 가지 끝에 있는 몇 개는 꼭 남겨두곤 하셨다.

  엄마와 아버지는 햇볕 드는 마루에 앉아 조상님의 제사상에 올린 곶감을 만들려고 감 껍질을 깎은 다음 광주리에 담아 초가 지붕 위에다 널어놓기도 하고 가느다란 싸리나무에 꿰어 처마 밑에 매달아 놓으셨다. 그리고 나머지 감은 항아리에다 넣어 광에 다 두면 저절로 홍시가 되었는데 겨울에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그제서 감을 꺼내다 먹었다. 아버지는 약주를 많이 드신 다음날 아침이면 감을 잡수시곤 했는데 아마도 감이 술이 빨리 깨고 주독을 없애는데 확실한 효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을엔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도 물론 아름답지만 감나무 잎도 넓고 부드러우며 수수한 것이 그만 못지 않아 책갈피 속에 잘 물들은 감나무잎을 넣어두곤 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뒤뜰 감나무는 감 꽃, 풋감, 땡감, 홍시, 곶감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버릴 것이 없는 우리의 좋은 먹거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도 게으르기도 하고 입이 고급이 되어서 작년처럼 감을 따지 않다가 찬 서리를 맞고 그냥 땅에 떨어져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