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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폭설이 내리던 날에(04.3.4)

by 박카쓰 2008. 7. 12.

                                       폭설이 내리던 날에(04.3.4)

 

동면 중이던 개구리가 따뜻한 땅기운에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인 오늘,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기상천외로 청주 기상대 관측으로는 제일 많이 내린 눈이라 한다. 수업시간, 세차게 퍼부어대는 눈발에 아이들도 공부보다는 창 너머 소나무 부러지는 광경으로 눈길이 돌아가고 우선 당장 오늘 저녁 하교 길과 내일 아침 등교 길을 걱정한다.

 

 그런 와중에도 어떤 아이들은 마음 한 구석에 동심이 남아 있는지 운동장에서 다치지 않고도 달려가 이리저리 구르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면 신이 나서 내가 이 세상을 처음 걸어가는 양 눈 발자국을 남기며 온 동네를 뛰어 다녔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오후 들어 들려오는 소식이 오늘은 좀 일찍 끝나고 내일은 휴교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새 학년 들어 시업식과 입학식을 마치고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설레고 들떠 있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제는 차분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이번 학년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나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기면서 새로 만나는 고등학생들에게 지난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느낀 마음을 몇 자 적으며 이번 학년을 새로 시작하고자 한다.  

 

 요 며칠 수업시간을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수업시간, 아예 시작부터 조는 아니 자는 애가 몇이나 되었다. 깨워보지만 억지로 치켜뜬 졸리는 눈으로 선생님과 책이 제대로 보일 수 없으며 공부 또한 될 리가 없었다. 물론 아침 0교시부터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일과에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수 없겠지만 어이 공부가 앉아 있다고 되랴! 우리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고 바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과거 사당오락(四當五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이상 자면 떨어진다)이란 금언으로 잠을 줄이려 하지 말고 ‘효율적인 시간관리자’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작금 ‘공교육이 무너졌다. 학교를 더 이상 못 믿겠다. 학원 강사를 모셔다가 오후 방과 후 수업을 시키자.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EBS 교육방송을 시청하게 하자.’ 정말이지 교육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솔직히 배우는 학생도, 학부모도, 사회도 우리 선생님들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기에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자존심이 상해 있으면서도 그래도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어야한다는 자긍심으로 부단히 수업을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음을 믿어 주었으면 한다.

 

 하루 열 대 여섯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만큼 소중한 시간이 없으며 그것을 가르쳐주시는 학교 선생님의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선생님을 믿지 못해 수업시간을 소홀히 하고 저녁시간의 자율학습이나 심야나 주말에 이루어지는 개인 교습으로 학습을 미루다보면 자연 공부는 공부대로 잠은 잠대로 제대로 이루지 못해 시간에 쫓기게 되고 효율적으로 시간관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한테 가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시험문제를 콕콕 집어낸다는 족집게 선생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잘 가르친다는 선생님이 추천과 심사를 통해 EBS 강의를 맡고 제작진들이 함께 자료를 만들고 여러 번의 리허설 끝에 강의가 이루어지는데 그 강의가 정말로 여러분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던가?  

  

난 늘 학년 초면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느냐?” “커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평소 자기가 갖고 있었던 희망을 말하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답한다. 실로 어이없는 대답이다. 무작정 공부에 매달려 성적을 올리려는 데만 연연하지 말고 이 세상을 살면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해 보고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한일 월드컵에서 ‘꿈★은 이루어진다’ 고 하였다. 하지만 그 꿈에는 자신의 뚜렷한 목표가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저 꿈만을 얘기한다면 간밤에 꾸었던 꿈이나 공상, 또는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는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끝임 없이 생각해보고 고민하면서 여러분들의 참다운 인생의 시작을 설계하였으면 한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TV에서는 많은 피해소식과 눈길 조심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주고 있고 여러분들은 지금 남이 가보지 않은 하얀 세상을 처음으로 여러분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라고 하시던 서산대사님의 시가 생각나게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