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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눈덮인 하얀 세상이 보고싶다(04.1.13)

by 박카쓰 2008. 7. 12.

눈덮인 하얀 세상이 보고싶다(04.1.13)

 

 

오늘 오후 낮잠을 자고 나니 머리가 좀 무겁고 몸이 다소 찌푸둥하다. 에라, 아침운동도 못했으니 밖으로 나가 바람이나 쏘일까보다. 베낭을 메고 밖으로 나갈때 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다섯시가 막 넘었는데도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간간이 비인지 눈인지 아,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용담동을 지나 우암산을 오를 때쯤에는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금년들어 첫 눈다운 눈이 내리고있다. 작년에는 그래도 자주 내렸고 제법 내려서 하얀 세상을 볼 수 있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설산을 오를 기회가 많았는데 올해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 내심 기다리고있었다.

점점 올라가며 눈이 쌓이고 있었고 고씨샘물에서 물을 뜨는 일보다 설경이 보고 싶어진다. 그래, 정상까지 가보자. 정상부근에서는 눈발에 바람까지 불어 온 천지가 뿌연 연기속처럼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이번에는 우암산 순환도로에서 달릴 생각을 해보았다. 벌써 어두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 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관음사로 내려가야 했다. 이젠 좀 편안한 발걸음으로 순환도로를 달린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눈비가 소나기 빗줄기처럼 내리고 있었고 아무도 걷지않은 눈쌓인
인도를 내가 처음으로 발자국을 내며 뛰어간다.

갑자기 서산대사의 시가 생각났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요즈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길에
내가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지 되돌아 보며 혹시라도 달림이가 뒤따라오며 이 양반이 갈之자로 뛰어간 것을 보니 초보라 할까봐 11자형으로, 좀더 세련되게 1자형으로 달려가본다.

순환도로도 끝나고 어린이회관앞 샘물을 한사발 퍼마시며 저 앞 동부우회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눈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명암저수지에는 명암타워 조명이 물속에 그대로 묻혀 눈속의 멋진 야경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내리는 눈이 더 내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하얗게 만들면 우리네 마음도 그만큼 하얗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일 새벽이 오면 어서 일어나 그런 하얀 세상을 보러 산성까지 올라가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