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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내고향은 온통 진달래동산...

by 박카쓰 2008. 7. 11.


  아직 창 밖은 시리지만 땅속에서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언뜻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엊그제 산에 올랐더니 진달래 나무의 꽃망울이 부풀어올라 곧 터트릴 기세다. 하지만 날짜를 보면 4월 초순경에나 피게 되니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 있어 그 봉오리를 움츠러들며 추위를 견디어 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살던 고향마을은 사방이 막힌 나지막한 산뿐이었는데 온통 진달래동산이었다. 얼마나 진달래가 많았으면 땔나무를 해오는 나무꾼들의 지게마다 나뭇잎을 모았는지 진달래 가지를 베어 나뭇짐을 꾸렸다. 그만큼 온통 진달래꽃이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이산 저 산을 뛰어다니며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따서 먹었는데 별로 맛은 없었지만  아마도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입술에는 루즈를 칠한 모양 검붉게 해가지고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 집에다 꽂아 놓기도 하며 등굣길에 진달래를 꺾어가 교실을 환하게 만들었던 일은 분명 우리들의 즐거운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한번은 철쭉꽃을 진달래꽃으로 잘못 알고 먹어 그 끈적끈적한 꽃이 입천장에 달라붙어 벗겨 내기도 했는데 그때 이후로는 진달래와 철쭉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옛날 촉나라 임금 두우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그 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가 되었다는 전설, 신라 때 한 노인이 수로 부인을 위해 절벽을 기어올라 진달래꽃을 꺾어 바친 獻花歌,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의 발길에 뿌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도 분명 이 꽃에는 슬픔과 절규가 섞인 恨맺힌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지만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진달래꽃을 소재로 아이들과 동시 짓기, 그림 그리기를 했다고 해서 보안법 위반으로 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北韓의 國花인 진달래꽃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北韓의 國花는 진달래꽃이 아니라 登山人들이 산목련이라 부르는 함박꽃나무란다. 
 

 산골짜기에 화사하지도 않게 다소곳이 피었다가 비바람에 소리 없이 지고 마는 진달래꽃이야말로 그 소박한 모습이 우리 韓民族의 情緖와 닮았기도 하고 조그만 難關에도 굳세지 못하고 쉽게 꺾이는 내 마음 같아 난 진달래꽃을 유난히 좋아한다.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달래꽃이 全國의 온 봄 동산을 분홍으로 물들게 할 정도로 흔히 볼 수 있으며 우리의 祖上들이 진달래꽃으로 술이나 전을 만들어 먹어 온 것을 보면 우리와 더불어 친하게 살아온 꽃이기에 우리의 國花가 무궁화보다는 진달래가 낫겠다싶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온산이 진달래 밭이 될텐데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는 소문난 산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용암 뒷산에서 낙가산에 이르는 좁은 길, 백화산에서 산성 서문에 이르는 등산길, 그리고 일주를 할 수 있는 상당산성 길에서 약간 안쪽에 있는 숲속 길을 오르다보면 나무와 바위 속에서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볼 수 있으리라. 진달래꽃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라고 하는데 나의 소중한 사람과 그 진달래 밭을 함께 거닐며 정겨운 이야기로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