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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시간흐름속의 떠난 크리스마스 여행

by 박카쓰 2008. 7. 11.

강兄! 늘 저를 만나면 촌스럽다고 하시는데 오늘 정말로 촌스런 얘기 해봅니다.
크리스마스 날 이른 새벽, 배낭을 메고 식수를 뜨러 우암산 고씨샘물로 향한다. 얼마쯤 오르니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하고 있다. 점점 눈이 많이 내리며 물 뜨는 것을 그만두고 하얀 눈을 맞으며 우암산에서 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으로는 예전의 크리스마스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어린 초등학교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일년 중 그때만 며칠 교회를 다녔다. 그때만 해도 동구밖에 있던 예배당에 가는 것이 異端처럼 친구들이 비아냥거렸는데 그렇거나 말거나 예배와 찬송마치고 나누어주는 튀밥과 눈깔사탕이 먹고싶어 마루에 꿇어앉아 어서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중 고등학교때는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들떠서 골방에 틀어박혀 등잔불 밑에서 이마를 맞대고 '나이롱뽕'을 즐겼다. 달력 뒷장에 소위 '끝수'를 적어 열 대여섯 번을 합하여 1,2등은 꽁 먹고 꼴지는 돈을 더 내어 그것으로 앙꼬가 돌돌 말린 빵이나 과자를 사다먹었다. 지금이야 고스톱이지만 그 당시엔 그놈의 '뽕'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콧구멍이 새까맣게 되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곤 했다.

총각시절엔 크리스마스 때면 모든 청춘남녀가 짝과 밤새 거닐며 젊음을 발산하는 줄 알았다. 나는 수줍은 성격 탓인지 함께 노닐 여자친구가 없어 울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곤 했다. 윗동네 새마을구판장에 올라가 두꺼비 상표가 붙은 소주를 사다가 내 방에서 말라비틀어진 노가리를 고독과 함께 씹어먹으며 내년 크리스마스에 꼭 하나 구해야지 다짐을 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크리스마스 이브 때면 고향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모임하는 지라 얘들끼리 놀라고 통닭 시켜주고 늦게까지 술먹다 들어오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난장판이 되어 버린 방에서 제 정신 모르고 자고있는 두 형제가 어찌나 안돼보이는지 참 미안했다. 

하지만 엊그제는 아내, 큰애, 작은 애에게 소망을 그득 실은 카드를 각 방에 넣어주고 일찍부터 잠에 빠졌다. 모두들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으니 오히려 함께 지내는 것이 추억이 덜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서 제멋대로 놀라고 했다.

 



이제 산성을 내려와 약수터 아랫마을을 지나며 흰 눈이 펑펑 내리며 새벽녘 닭 울음소리와 참새소리에 아침을 여는 시골이 퍽이나 고즈넉해 보인다. 내 고향마을은 저보다 더 멋지겠지? 많이들 달라졌다고 하지만 오늘처럼 옛 추억을 찾아보면 내가 살아온 소중한 것들이 아직은 남아있을 것이다.

강兄! 고향이 충남 당진으로 알고있는데 강형이 살았던 고향의 추억 어린 크리스마스는 더 멋졌겠죠?

(마라톤 회원이었던 강형이니 2002년쯤 썼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