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않으니 일상처럼 운동하러 나왔다. 간밤에 눈이 살짝 내렸네.
남들이 걷지않은 길을 일부러 찾아 걷는다. 특히 잔디밭 눈위를 걷는 느낌이 참 좋다. 어쩜 이리 푹신할까?
거의 매일아침 운동하러 오는 금천배수지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도 없네. 그도 그럴 것이 설날 아침에 누가 이곳으로 운동하러 오겠는가? 아빠가 별난거지. ㅋㅋ
설날 아침을 달랑 둘이 맞이하는 것도 처음인 것같다. 너네는 보름후 출산이고 상*네는 쌍둥이 임산부이니 무리하면 안되어 각자 집에서 쉬기로 했지. 나는 떡국, 엄마는 부침개와 잡채를 데워먹었다.
불과 2년전만해도 이리 종갓집 차례상을 차리고 분주한 설명절을 보내곤 했잖니? 사람들 모이지마라는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며느리얻으며 나도 싫은 제례문화, 너희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작년에 확~바꾸어버렸지.
오늘 말그대로 雪날인가보다. 고향가는 길 눈이 내리니 더 운치가 있고 상*랑 많은 이야기 나누네.
아들, 임산부 케어라느랴 힘들지? 세상 참 무섭게 바뀌어가고 있다. 요즘 부모님 돌아가시면 火葬場이 대세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모를 화장시킬 거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니? 내년쯤 할아버지할머니도 이곳 납골당으로 모실거고 나, 엄마도 종당엔 이곳으로 오겠지.
베이버 부머인 우리들은 효도하는 마지막세대 효도못받은 첫세대 이른바 '낀세대'라며 가장 불행한 세대인줄 알았다. 하지만 너희보니 그게 아니네. 나가서 돈도 벌어야하고 퇴근하고는 집안 살림도 하고 명절땐 주방일도 대부분 니네들이 하네. 아빠세대는 부인들에게 대접받는 마지막 행운의 세대였어. 만삭의 몸으로 촌구석 시댁을 찾아 종갓집 맏며느리 노릇한 네 엄마를 생각해보니 참 애처롭게 느껴지더라.
그래도 우리집은 양반이란다. 얼마전 아들이 둘이면 목메달이라고했다. 정이 없는 아들 비아냥거리는 소리지. 하지만 이제는 '그 아들이 돌아온 금메달'로 바뀌었단다. 주변 딸을 둔 친구들은 퇴직하고 나서 노후에도 자기 취미생활을 접고 딸네집 일 거들며 손주보고 있다. 늙어가며 몸도 성치않은데 뛰어다니는 손주들 보는게 어찌 쉽겠냐? 요즘 노인들에게 노후 파산이 큰 문제가 되고있다. 그런데 그게 돈만의 문제는 아니지.
차례는 안 지냈어도 이번 설 엄마는 힘들었지. *현네까지 보낸다고 물김치를 3통이나 잠갔지 밤새 불을 지켜보며 식혜했지 동그랑땡 부침개에 잡채까지 했으니 말이다. 먹지않은 제사음식보다는 훨 낫지. 그래도 다음 명절부터는 더 줄이자. 각자 뭐 하나씩 해온다고? 그러면 더 좋지.
와~ 오늘은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그쳤다 하네. 아빠는 눈 내리는 날이 생일보다 더 즐겁단다.
용정동산림욕장~김수녕양궁장~보살사 다녀오는 길이 아빠가 제일로 좋아하는 산책로란다. 보통 2~3시간 걸려.
이곳이 청주 인근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 보살사다. 부처님께 삼배드리며 임인년 한해 우리가족 무탈을 다시한번 기원해본다. 자그만치 호랑이가 세 마리나 세상에 나오니 얼마나 흐뭇하냐! 올 설날은 한산했지만 내년 설엔 웃고 울고 난리가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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