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스토리 윤재혁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작금의 이어지는 성추문 사건....
그 어떤 글보다도 정확하게 정곡을 뚫고있네요.
이제껏 남성위주의 성의식에 자성...
박카스도 남자(?)이기에 공감합니다.
<바보야, 문제는 아랫도리야!>
2000년 어느 날, 엄혹한 군부정권 시절에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일약 '통일의 꽃'으로 불리던 임수경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5월 17일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란 제목을 단 임수경의 글은 운동권 선배들이 술판을 벌이던 룸살롱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다. "송○○선배는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불렀고, 박○○시인은 아가씨와 불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 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네가 왜 여기 들어와? 나가, 이놈의 계집애. 네가 뭔데 이 자리에 끼려고 그래? ××년.' " 그 해 선거에서 낙선한 우○○의 주폭 짓이었다. 듣고 있던 임수경도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참외를 내던지며 한마디 했다. "이런 씨발, 어따 대고 이년 저년이야!" 임수경은 자신의 글에서 모든 등장인물을 실명 처리했다. 왕년에 민주화 투쟁 좀 했다는 자들이 5•18 민주항쟁 전날 밤에 광주에 내려가 룸살롱에서 질펀하게 놀면서 벌인,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짓거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말로만 듣던 386 운동권의 민낯을 제대로 알게 해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민주화 투쟁 동료 및 후배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쯤은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으로 여겼다는, 소위 386 운동권들의 왜곡된 성의식 하에서는 통일의 꽃도 한낱 계집애일 뿐이다.
비단 이 사건 때문은 아니더라도 性에 대한 수컷 본능에 좌우가 따로 없음을 모르던 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경쟁하듯 줄줄이 이어지는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성추문으로 지켜보는 국민이 패닉 직전이다. 한 나라의 제1, 제2 도시 수장이 사퇴하거나 자살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았다. 성리학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덕국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세계적으로도 초유의 일이라 혹시 기네스북에 오르는 국가적 불명예를 안게 되지나 않을까 저어된다. 그럼에도 민주당 대표 이해찬은 사과는커녕 기자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치고 육두문자를 날린다.
자살은 미화의 대상인가, 무책임의 전형인가? 어떤 자살은 또다른 '가해'라는 말도 있다. 국민은 황당할 뿐이다. 국내 첫 '성희롱 재판' 승소를 이끌어낸 주역이자 대표적인 여성 인권변호사가 자신의 전직 여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도 기함할 노릇인데, 피의자가 사과도 해명도 없이 곧바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한국 정치는 극적이다 못해 극단적이다.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이 잦다. 자살한 순간 고인의 허물과 과오는 덮어지고 애도를 넘어 미화의 대상으로까지 분식되기 일쑤라서인가. 조문 온 최장집 교수는 "박시장이 죽음으로 모든 것을 답했다"고 했지만, 그의 극단적 선택으로 힘없는 피해자는 이미 2차 피해를 입었다. 극렬 지지자들의 신상털기도 기승을 부린다. 민주당은 피해자 보호 조치를 즉각 가동하라. 하나마나 한 재발 방지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니 장례를 마친 후 성추행 의혹을 유야무야 덮을 궁리 따위는 하지 말고 사건 규명에 앞장서라. 아울러 피해자의 민사 소송에도 적극 협조하라. 그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성추문 방지 대책이 아니겠는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는 유창선 후배는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며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나 혼자라도 이 얘기는 꼭 전하고 싶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100% 동의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피의자가 되자 먼저 국민께 사과하고 사퇴한 후 재판에 회부되어 3년 6개월의 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공개 사과한 후 사퇴했다. 그리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연히 혐의 인정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선출직 고위 공직자로서 누구의 선택이 도리에 맞는가?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 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본다." 박시장이 작성한 '우조교 성희롱 사건' 고소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성희롱도 불법임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여성인권 변호사로 명망 높던 고인이 남긴 어록은 이밖에도 많다. "여성 중심, 노동 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 "성희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미투 운동은 용기있는 영웅들의 행동이다."... 박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은 평생 자신이 해오던 말의 무게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는 별개로 박시장의 선택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피해자가 억울함을 해소할 기회와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기회를 원천봉쇄했고,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책임지는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면 아랫도리 관리에 실패하는 인사들이 의외로 많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뻔히 보이는 패가망신의 길을 걷는다. 지근거리에서 자신의 일정을 챙기고 손발처럼 구는 비서를 여자로 보기 시작하고, 비서가 자기를 좋아해서 그리 하는 거라고 착각한다. 권력이 주는 착각이다. 착각은 망상으로 이어지고 여비서를 오피스 와이프쯤으로 여긴다. 이미 SNS 상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피해 여성의 고소장을 보면 가해자의 그런 심리가 고스란히 읽힌다. 은밀하게 자행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성희롱. 늦은 밤 텔레그램을 타고 들어오는 추잡한 사진과 끈적한 음담패설.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치근덕거림에 무력한 여비서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도움을 호소해도 서울시 고위 간부들은 외면했다. 시장은 왕이었고, 그들은 왕의 일탈을 방조한 공범자들이다.
직위를 이용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 당명이 새누리당이던 시절 '성누리당'으로 불릴 만큼 성추문 단골이었다. 요즘은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만져당'으로 조롱당할 정도로 스캔들이 터졌다 하면 그쪽이니 대한민국 권력지형이 바뀌었음을 성추문 사건에서도 실감한다.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성적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평생 일구어 쌓은 명성을 한순간에 잃는다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없다. 직장 내 성희롱의 오랜 악습을 깬 '미투' 운동의 도화선은 미국의 폭스뉴스였다. 8일 개봉한 영화 <밤쉘>은 여직원 성희롱을 일삼은 로저 에일스 폭스뉴스 회장이 성희롱 폭로로 추락한 실화를 그렸다. 2016년 고소를 당한지 불과 16일 만에 에일스는 파멸했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고, 239억원의 합의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소송 이듬해 사망했다. 민주당은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 양 우아하고 거룩한 척 그만 하라. 나는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무슨 짓을 해도 용인된다는 철 지난 운동권적 독선과 그릇된 선민의식에서 깨어나라. 성인지 감수성이 미약하고 아랫도리 관리에 자신이 없는 분들은 공직에 나서지 마시라. 남자들은 세상의 모든 여자를 원할지라도 여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못난 남자들의 문제는 아랫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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