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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수필]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by 박카쓰 2017. 12. 28.


또 한해를 보내며...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박 해 순

 

   난센스퀴즈로 이런 문제가 있다. “하루에 두 번만 맞는 시계는?” 정답은 고장 난 시계다. 바늘이 멈춰선 그 시계는 하루 24시간 중 딱 두 번 오전 오후만 맞는 시계이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시계도 흐르는 세월보다 낫다고 노래한 유행가가 있다. 나훈아씨가 불러 히트한 고장난 벽시계이다. ‘...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나이 들어가며 이 노래가 더 가슴속으로 공감되는 건 뭘까?


   벌써 한 해가 저무는 세모에 가까이 와 있다. 희망찬 새 걸음으로 시작한 한해가 속절없이 기우는 걸 보면 흐르는 세월이 고장 난 벽시계처럼 차라리 고장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덧없이 흘러간 한 해가 아쉬워지는 요즈음이면 이래선 안되겠다며 나를 독려하던 영시(英詩)가 있다. 이 시의 앞부분은 대충 내용만 알고 마지막 부분은 외워서 떠올린다.

               


         ..........................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숲은 아름답고 저물었고 깊은데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가지않는 길(The Road Not Taken)'로 우리나라사람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Robert Frost(18741963) 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이 시에서 눈으로 덮여 있는 고요한 숲속에 당도하고서도 그 평화스러움과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조랑말의 고삐를 잡고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시인의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인간 누구에게나 숙명처럼 짊어진 가야만 하는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말이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요즘 이 말이 더없이 내게로 다가온다. 문인화와 수필을 공부하러 다니고 이곳저곳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그날 배운 것은 학창시절 노트 정리하듯 철저히 내 블로그(http://blog.daum.net/seahs99)에 옮겨 놓으며 뭐라도 배우는 재미가 가르치는 재미보다 솔솔하다.

 

  '인생2' 이라는 은퇴 후의 삶! 교단에서 퇴임하면서 이제껏 아이들 열심히 가르쳐왔으니까 이제부터는 푹 쉬면서 간간히 여행 다니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저냥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며 살아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이제껏 그랬듯이 해마다 연말이면 늘 후회스런 한해를 보냈다며 아쉬워해왔으니까 말이다.

 

   평생 목발에 의지해야했던 삶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암투병속에서도 책과 강단을 놓지 않고 집필활동과 제자사랑을 아끼지 않은 장영희 교수님 그리고 죽기 전날까지도 암과 싸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생방송을 진행한 암투병 가수 길은정씨의 삶은 오늘 하루도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다. 오늘도 이 구절을 되뇌며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야겠다.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