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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수필] 백일장 대회

by 박카쓰 2017. 6. 30.

백일장 대회

박 해 순

 

   지금도 있긴 있지만 유명무실해진 5일장! 내 고장 청주 인근지역에서도 전통시장인 5일장이 청주, 옥산, 오창, 미원 그리고 조치원 다섯 지역을 돌아가서 열렸었다. 그중 내가 살던 곳에서는 충북지역이었지만 조치원이 가까워 그곳으로 장을 보려 다녔는데 조치원 장날은 매달 5·10일이 들어간 날이었다.

     

  내 아버지는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시면 의례히 장에 가고 싶어 하셨다. 농번기에 꼭 사야할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밀린 농사거리 놔두고 장에 가시는 아버지가 싫었고 때로는 주막에서 술에 취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집까지 오는 길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어릴 적부터 5일장이 열리는 것이 참 싫었다.

  

  시골 촌놈이 중학생이 되어 청주로 기차통학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입학하여 얼마 안 된 5월쯤 담임선생님이 백일장 대회가 열린다고 희망자를 조사하시더니 희망학생이 없자 나보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아이쿠. 이를 어쩌란 말인가? 5일장도 싫은데 100일장이면 무려 20배가 되는 동안 장이 서는 거니 아뿔싸! 난 죽었구나!’ 늦게 기차타고 와서 집으로 돌아갈 때 배는 고픈데 주막집에 계신 아버지를 밖에서 부른다. “아버지! 집에 가유. 아버지! 집에 가유.” “, 이 사람아. 그만 마시고 가게. 아들이 저리 부르잖아.” 그래도 방에서 안 나오시는 아버지 싫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어머니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며 안달을 하신다. “에구구. 너희 아버지 모시고 오지 그냥 왔냐.”

  

   거의 5일마다 창피하고 서러운 이 노릇을 무려 100일 동안이나 어떻게 하고 있으란 말인가? 지금 같으면 못한다 할 수 있으련만 그때는 선생님말씀이면 아예 토를 달 수 조차 없었다. 게다가 지난 3월말 월말고사에서 치욕의 성적표를 받고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30리길 집까지 울고 간 적이 있었지 않은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점심시간 큰 확성기에서 대회에 출전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각반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필기도구를 가지고 나와라.” ‘어라! 백일장이라 해놓고 웬 필기도구야?’의아해하며 운동장에 나가보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커다란 운동장에 체조대형으로 쫙 펼쳐놓네. 옛날에 과거 시험을 이렇게 보았다더니. 이윽고 개인당 1장씩 큰 갱지를 나눠주어 펼쳐보았다. ‘, 이게 뭐야! 국어시험이잖아!’ 맞춤법에 맞게 고쳐 쓰기, 주어진 말로 행시(行詩) 짓기, 부모님에 대한 글쓰기 등등.

 

  야! 이까짓 꺼. 내가 그간 마음 고생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글쓰기는 마음 조렸던 백일장대회에 아버지를 미워했던 이야기와 앞으로 아버지에 대한 바람을 빼곡히 적어놓았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께서 내 머리에 꿀밤을 주시면서 , 임 마. 백일장이 무슨 5일장인줄 아냐?”하시며 여러 친구들 앞에서 글을 잘 써서 상을 타게 되었다고 칭찬해주셨다. 얼마가 지나고 난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조회 단에 올라가 난생 처음 백일장대회 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전교생에게 매 학기 초에 실천일기노란 표지의 일기장을 나눠주었는데 매일 일기를 쓰게 하여 매주 매달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학기말 때마다 시상을 하였다. 나는 지난 백일장대회가 인연이 되었는지 한 학기 끝날 때마다 조회 단에 올라가 상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잘못한 일을 많이 해서 그것을 일기 속에 적다보니 쓸 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일기 쓰는 버릇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이제껏 써오고 있으며 내 블로그에 꼭 일기가 아니라도 독후감, 산행기, 강의록 등등 살아가는 오만가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일기처럼 블로그에 남기며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을 마음 고생시킨백일장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먼저 백일(白日)이라는 말은 대낮으로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의 밝게 빛나는 해를 이르는 말이고, 백일장은 100일 동안 무엇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백일(百日)아니라 백일장(白日場)이었다. 이런 백일장은 조선시대에 유생들이 모여 시문(詩文) 짓는 행사를 가졌는데 달밤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시재(詩才)를 견주어보는 망월장(望月場)과 대조적인 뜻으로 대낮(白日)에 시재를 겨룬다 하여 생겨난 말이라 한다. 백일장의 본래 뜻을 기려 지금도 국가나 여러 단체에서 시·시조·산문의 백일장등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으며 어린이·학생·주부 백일장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학창시절 우연히 참가한 백일장대회에서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으며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에서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 있는 백일장 대회에 점차 참가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높은 단계의 사고력은 창의력이다. 그 창의력을 키우는데 가장 좋은 것은 머릿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TV, 컴퓨터, 스마트 폰에 빠져 있고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는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이 되어버렸다. 장차 문학가나 미술가가 되기보다는 인기 있고 돈 많이 버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꿈꾼다. 가수를 꿈꾸며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오죽하면 한국사회를 오디션 공화국이라고 부를까?

   

   물론 개인의 흥미와 재능에 따라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음악적 재주가 아닌 허황된 스타에 대한 동경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한방에 인생역전이라는 드라마를 쓰는 일이 쉽지도 않거니와 우리 한국사회에 그와 같은 열풍에 대한 우려도 또한 적지 않다.

  

  요즈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직접 취임사나 연설문을 써서 자신의 견해와 포부를 밝힌다고 한다. 자신의 말이 아닌 남이 써 준 원고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읽는다면 무슨 소신과 비전이 있으랴!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언어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하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다들 싫어하고 어려워한다. 하지만 일기부터 써보자. 사람들 손마다 달라붙어 있는 스마트 폰을 꺼내는 대신 책을 꺼내 읽고 독후감을 써보자. 그렇게 차근차근 글을 쓰다보면 더 조리 있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고 글 쓰는 힘은 커져 남들을 설득할 만큼의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어린이, 학생, 주부, 일반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각가지 백일장대회가 수없이 열리고 있다. 그 백일장대회가 문학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장차 문학인이 되는 등용문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써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남을 설득하는 능력을 키우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