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모음/보은小考

다시 공부해보는 보은삼년산성&동학혁명(15.3/26,목)

by 박카쓰 2015. 3. 27.


전교생이 청주 학생교육문화원으로 뮤지컬을 보러 가고

학교는 모처럼 한가한 오후를 맞았다.

기회는 찬스!  

한달에 한번 찾아보기로 한 보은삼년산성을 다시 찾았다.   

 

마침 20년전 함께 근무하던 송*헌 선생님께서 이곳 문화해설을 하고 계셨다.

참으로 반갑기도하고 늘 부지런하신 분...

보은군주민자치위원장을 맡으시며 고향발전을 위해서도 애쓰시고 계시네.

 

 


그 분을 따라 오늘 다시 보은삼년산성을 공부해봅니다. ㅎㅎ

삼년산성은 청주상당산성, 단양 온달산성과 함께 잘 축성된 산성이라고...

이 연못이 '아미지'이다. 

당시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거했겠지... 


 


남쪽 다섯 산그리매너머 옥천 관성산...저곳이 백제였고

신라군과 맞붙어 백제 성왕이 목이 잘리고 대패했단다.  

그후 성왕의 아들이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에 백제의 후손이 되었다고...

 

[역사의 현장]

서기 554년 7월에 백제의 대군을 맞아 옥천 지역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신라군은 형세가 불리하여 졌다.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신라와 백제는 온 국력을 동원하여 국가 존망의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하였다. 몇 해 전까지 고구려에 대항하여 친구 사이가 되어 힘을 합하여 싸우던 전우(戰友)의 가슴에 서로 창을 겨누고 칼로 목을 베어야 하였다.

신라군은 상주(上州, 尙州 지역과 그 인근)에서 온 군대가 동원되어 막고 있었으나, 형세가 불리하여지자 한강 유역에 새로 설치한 신주(新州)의 군대를 투입하여야 하였다. 신주의 군주인 김무력은 주 내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드디어 승리를 눈앞에 둔 듯한 백제군과 응원군이 도착하여 사기가 다시 높아진 신라군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김무력의 휘하에 비장(裨將)으로 삼년산군의 고간(高干) 관등을 가진 도도(都刀)는 백제군을 급히 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게 되었다. 이 때 신라군은 이긴 기운을 타고 크게 백제군을 이겨, 백제의 최고 관등인 좌평(佐平) 4명과 사졸 29,600명을 목베어 말 한 필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참패를 안겨주었다.

 

 


멀리 구병산 그리고 한남금북정맥...

가까이는 앞으로 개발될 고분군이다.

이곳에 오랫동안 고구려, 백제와 싸움을 하면서 많은 병사들이 묻혔을 것이다.  


 


저쪽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있는 곳으로 과거 이런 슬픈 역사가 있네요.

보은지역에서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북실전투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곳에 기념공원이 생겼단다.


 

[역사의 현장]

보은과 동학농민혁명

조선 오백년 동안 영화를 누려온 양반 중심 사회는 갑오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됩니다. 1893년 봄 충청도 보은군의 장안마을과 전라도 금구현의 원평마을에서 부패 척결과 외세 침투를 배척하는 동학집회가 대대적으로 열렸습니다. 동학도들은 왕조정부에 "나라를 바르게 하여 백성을 살기 편하게 만들고, 일본과 서양의 침입을 막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그 다음해인 1894년에는 전라도에서 동학농민혁명이 불타올랐습니다. 일본이 무단으로 파병하여 서울에 들어가 경복궁을 기습 점거하자 동학농민군은 전국에서 봉기하였습니다. 동학교단을 따르는 동학농민군은 충청도는 물론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일어나 무장을 갖추고 보은으로 집결하였습니다. 동학농민군은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출진하여 논산으로 가서 전봉준의 호남농민군과 합세하였습니다. 우금치 전투는 남북접 농민군이 함께 참여한 대규모 공방전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밀려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로 후퇴하여 순창, 장수, 진안, 무주를 거쳐 영동으로 돌아와 충북 보은으로 향하였습니다. 12월 16일(음력) 눈이 많이 쌓인 한 겨울밤 장거리 행군으로 지친 동학농민군 대부대는 보은 북실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동학의 고위지도자들은 보은 누청리의 김소촌가(金召村家)에 모여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동학농민군  을 기습하여 김소촌가를 공격하였습니다. 다행히 최시형을 비롯한 동학 지도부가 떠난 뒤에 기습이 이루어졌으나 동학도의 2,600여명이 북실마을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합니다. 
- 출처 :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안내문

 

 

 

 

 

 

 

 

 

보은삼년산성

신라 470년에 축조, 가장 오래된 산성이고 일선군 지금의 지명으론 경북 선산군에서 장정을 동원하였고

3년만에 완성되었다하지만 16년뒤에도 증축되어 서기 742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단다. 

현존하는 약 2,000여개의 산성중 유일하게 축조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산성이고

과거 삼국시대에 이곳이 군사적인 요충지대여서 주변에 많은 성이 잔존하고 있단다.

 

축조방식은 석축성벽을 돌린 포곡식 산성으로 구들장처럼 납작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우물정자' 모양으로

한 켜는 자로 쌓기, 한 켜는 세로쌓기로 축조하였기때문에 견고하여 지금껏 보존되어 오고 있다고...

 

 

 



둘레가 1,680m로 비교적 큰 규모, 높이는 13~20m 최고 22m이고  폭 또한 8~10m로

외벽과 내벽 사이가 흙이 아닌 돌로 채워져 그 견고함이 당대 최고수준...


 


송선생님 어린 시절엔 지금의 삼년산성보다 훨씬 더 잘 보존된 산성을 볼 수 있었으나

지난 1980년 보은 대홍수때 이렇게 성벽이 허물어져 안타깝다고...


 


보은사를 내려와 이곳은 체험학습장...


 

오늘 보은역사와 문화를 세세히 알려주신 송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이곳에 철쭉이 필 즈음인 4월22일경 다시 찾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