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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다시는 풀코스안뛴다고 결심한 경주동아마라톤대회(04.10.31)

by 박카쓰 2010. 12. 11.

이젠 sub-4도 안되네

2004경주동아마라톤42.195Km

2004년 10월 31일

4시간01분34초

 

 

  우리가 어떤 일을 처리할 때는 두 가지 패턴이 있고 사람도 두 가지 형이 있는 듯하다. 주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하려는 사람과 남들과 휩싸여 끌려가는 듯 일을 처리하는 사람 두 형으로 볼 수 있다. 마라톤도 그렇다. 내가 속한 청주마라톤동호회에서도 1분1초라도 줄이려고 각종 훈련과 식이요법으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오히려 즐기는 회원이 있는 가 하면 그저 속도에는 별 관심 없이 그저 즐겁게 달리는 것으로 만족하며 회원들끼리의 멤버쉽으로 달리는 회원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여 체중이 많이 줄이면서 이 언덕 저 도로를 뛰어 다녔는데 얼마 되었다고 그것도 게을러져 겨우 ‘피박이나 면하고 보자’는 식이니 대회를 나갈 때부터의 마음자세부터가 달랐다. sub-3냐 sub-3.5냐 저 난리들인데 나는 목표라야 “사수 sub-4!”를 외치고 있으니 이 수동적인 내 인생은 마라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 해보자.

 

  토요일 일찍 잠이 들을 참인데 작은 녀석이 토요일 밤이라고 영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밤에 뭐 그리 할 일이 많은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안되겠다 싶어 새벽 1시 30분에 일어나 설쳐대기 시작한다. 3시경 정육점 사장님과 함께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니 이미 많은 회원들이 나오셔 인사를 나누며 이번 마라톤대회 가을의 전설을 꿈꾼다.

신라의 고도 경주는 일요일 아침 7시, 이른 시간이지만 마라톤 인파의 물결로 황성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우리도 한 자리 잡고 스트레칭을 간단히 마무리하고 “청마! 청마! 청마! 아자! 아자! 아자!”를 외치며 8시 곧바로 레이스로 이어진다.

  초반에 오버하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고 올 들어 30Km 이상 LSD훈련은 거만하게(?) 하지도 않았으니 만만디 작전으로 5Km를 30분에, 10Km까지를 내 목표대로 57분에 진입했다. 이젠 제1 반환점을 돌아 10Km 당 55분대로 달려보려고 속도를 내 보지만 오늘따라 오른 무릎 뒤쪽 인대가 당겨오는 것이 더 심해진다. 사실 이런 증상이 몇 달째 지속되고있지만 좀 지나면 낫겠지 이런 생각으로 달리곤 했는데 오늘따라 좀 심하다 싶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의기소침해져 페이스가 쳐진다.

  다리를 건너 농촌마을로 접어드는 15Km 지점을 지날 무렵 이종만 형님이 벌써 20Km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이리 늦었나? 한 참을 더 달려나간 후 돌아서 20Km를 지날 무렵에 벌써 1시간 54분, 21Km 지점을 정확히 2시간에 통과하고 있었다. ‘야! 작년만 못하구나. 남은 반 거리를 지금처럼 달려야겠네. 그 정도야 하겠지.’

 

   이때만 해도 당찼지.

 

 아까부터 땡겨오던 그 통증이 이젠 무디어 졌다보다. 그래, 이제 달릴 만 하구나. 달리는 도로 옆으론 천년 고도답게 무령왕릉 등 문화재단지가 곳곳에 있고 노오란 은행잎과 불그스레한 벚꽃 단풍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떨어지며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들의 인간 승리 모습을 반겨주고 있었다. 시내를 이리저리 돌게 만든 이번 코스에서 올적 갈 적 우리 청마 회원님을 스치며 선두권을 달리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러워 마음껏 응원을 보낸다. 나도 앞으로 늘어선 벚꽃 길 단풍 사이로 모자를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역주(?)를 거듭하며 달리는 모습에서 이 땅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이 뛰는 가슴만큼이나 벅차게 다가오고 있다.

 

  30km 지점에서 좀 쉬었다갈 요량으로 좀 달렸지만 별무신통이다. 에라! 좀 요기나 하고 가자! 이온음료와 바나나를 하나씩 집어 입에 물고 멀리 형산강너머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소피를 본 다음 무릎 돌리기를 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은 2시간 53분! 이제 12Km를 67분에 달려가야 한다. 만만디로 달려왔으니 속도 좀 내면 갈 수 있겠지. 길을 갈 적에도 가본 길보다는 안 가본 길이 낫듯 역시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지겨운 노릇이었다. 35Km 지점을 지나며 걷는 사람이 부쩍 늘어간다. ‘나도 걸을까? 안되지...여기까지 와서? 암만 못해도 목표인 sub-4는 해야될 것 아냐?’

  도심으로 들어선 도로는 시민들과 경찰이 교통통제로 곳곳에서 언쟁을 벌이고 마라톤도 좋지만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달리면서도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경주도 코스는 좋을지 모르지만 대로를 막고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엔 무리가 따른다싶다. 이젠 교통통제로 잘 안되고 주자들도 힘이 겨운 모양이다. 걷는 사람, 쥐를 잡는 사람, 누워있는 사람, 무엇이 이 사람들을 저리 힘들게 달리게 하는가?

 

왜 이 짓거리 하는지...나도 몰라...

 

 나도 벌써부터 마음먹어오던 터였다. ‘이제 풀 코스는 힘들다. 하프만 뛰자. 하프도 1시간40분대 진입은 버겁고 2시간 내로만 들어오자.’ 점점 힘들어지며 내 마음은 그렇게 약해져 가고있었다. 마이크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에 다 온 줄 알았던 코스가 마지막까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가?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에이그, 틀렸다! 에라, 그렇다면 사진이나 잘 나오게 넉넉히 웃으면서 들어가자.’ 4시간 1분 34초! 기록으론 이제까지 제일 못 뛰었다. 그것도 목표인 4시간을 넘겼으니... 초반부터 공격적인 레이스 운영을 했더라면... 땡기던 종아리를 더 땡기게 했다면... 하지만 그 몇 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우리 청마회에선 꼴찌수준밖에 되지 않은 기록이지만 대회 참가 자 10명중 4등은 하는 기록이고 쉰에 접어드는 나이에 이렇게 완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튼튼한 다리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노릇이다.

 

지친 모습이 확연하다. 쯧 쯧...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풀코스는 얼굴도 못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