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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풀 코스는 아무나 하나?(02.4.21 동양일보마라톤)

by 박카쓰 2008. 7. 13.

 아침에 나갈 적부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청마회 유니폼을 입고 나가기가 겁이 났다. 혹시라도 낙오라도 하여 청마의 이름을 더럽힐까 몹시 걱정되었다. 하지만 저의 이름 석자가 아직은 청마회에 알려지지 않아 인사도 하고 오후 음식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유니폼을 입는 것이 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시간 즈음 풀코스에 처음 도전하는 저의 가슴은 새가슴처럼 콩닥콩닥 뛰지만 주위의 격려와 내가 살고 있는 청주를 둘러본다는 의미를 갖고 열심히 달려볼까 했다.   

  청주종합운동장에서 식전행사가 끝나고 10시 28분, 징 소리와 함께 출발! 봉명동고개를 넘어 비하동 4거리로 청마 회원들과 이런저런 담소로 웃음꽃을 피어가며 즐겁게 달린다. 이제 청주외곽도로로 접어들어 1Km 6분대 페이스로 달려나가니 하프때 1Km를 5분대로 달리다가 이렇게 6분대로 달리니 힘드는 줄 모르고 몸에 땀도 별로 나지 않는다. 하프코스 반환점에서 하프선수를 떨쳐 보내고 나니 훵- 하니 외로움마저 느낀다.

 

 충주로 가는 4거리를 지나며 우측의 성모병원을 지나게 될 때는 눈물이 감돈다. 시골에서 외롭게 살아가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지 한 달 남짓, 그간 중환자 실에서 사경을 헤매시다가 이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그 뒤에 오는 반신 마비는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병간호하는 자식들보다도 정작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속상하시랴!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동부우회도로는 그래도 내가 연습해온 주도로인 만큼 힘이 덜 들게 잘 넘어간다. 18Km 지점에서는 그래도 사랑하는 이라고 식구가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Fighting을 외쳐준다. 이제 용암동에 접어들어 절반인 21Km 지점을 2시간 13분에 통과하고 분평동에 이르니 4시간30분대페이스 메이커인 고재석 부장님이 풍선을 매달고 페이스를 유도하기에 얼마쯤 쫓아가 보지만 다소 힘이 부친다.

 

  반환점을 돌면서 목이 마렵고 허기가 진다. 뭔가 좀 먹어야겠는데 먹을 것이라곤 과자밖에 없어 몇 개를 입에 물었는데 너무 달아서 오히려 목이 탄다. 이제까지 동반주해 준 정구철님을 생각해서라도 더 달려하는데 점점 힘은 떨어져 페이스가 늦어지며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을 생각으로 먼저 보내고 페이스를 더 늦추면서 달려본다.

 

 급기야 이젠 걷는다. 에이구, 조금 걷다가 5시간 페이스메이커나 따라가자.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29Km 지점에 다다르지만 물은 없고 소폰지만 있다. 소폰지를 짜서 물을 받아먹으며 얼마쯤 다시 걷고 뛰고 하는데 양지모님의 5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마지막 열차처럼 다가오지만 1Km 7분대인 그 페이스마저 따라붙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아이쿠, 이젠 꼼짝없이 혼자 가게 생겼네.

  얼마 후 119 구급대 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다가오고 나는 기다렸다는 양 얼른 올라탄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나보다 훨씬 베테랑들도 차례차례 이 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운동장 가까이에서 얼마동안 쉬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둥 풀 코스를 완주한 주자처럼 운동장에 들어선다. 청마회본부를 지나갈 무렵 회원님들이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주시지만 고개를 떨구며 그 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풀 코스는 아무나 하나? 국종달을 빼놓고는 30Km 이상은 달려보지 못한 나에게 풀 코스는 맵새가 황새 쫓아가려는 형국아닌가? 오늘 늦게라도 풀 코스를 완주하신 회원님들이 지옥에서 끝까지 따라오는 저승사자처럼 느껴지며 그렇게 위대하게 보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