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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청주에서 내가 다닌 초등학교까지

by 박카쓰 2008. 7. 13.

2004년 5월 2일, 28Km, 2시간 54분!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시골 다녀올 때면 생각했었다. ‘언제 여기까지 뛰어와야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이번 달림은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못해 걱정이 앞서는 것과는 달리 어서 그날이 다가와 고향까지 달리고 싶었다.

 

 어제 저녁 하늘이 검어지고 바람이 다소 세게 불며 비가 올 것 같아 밤새 잠을 뒤척이며 새벽녘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서늘한 뿐이었다. 다행이다. 좀 더 일찍 아침을 먹어야 했기에 식구가 차려주기 전 참외, 빵 등으로 요기를 하고 카메라, 물통, 갈아입을 옷 등을 배낭에 주섬주섬 챙겨본다.

 

 7시에 집을 나와 아파트 앞에서 10분간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푼 후 달려 나간다. 덜렁 덜렁거리는 배낭이 어깨를 좀 누르지만 그런 대로 속도를 낮추니 달릴 만하다. 명암 저수지를 달리면서 주변 산의 신록이 연초록에서 청록으로 물들어 가며 그렇게 신선할 수 가 없었다. 이제 우회도로로 접어들며 간혹 빗방울이 떨어져 시원함을 주니 달리기에 더없이 좋다. 충주 가는 사거리 전에서 전에 청*중에서 함께 근무하던 임*만선생님을 만났다. 운동을 퍽이나 좋아하셨는데. 허연 백발로 산성을 오르신단다. 내도 머지않아 저런 모습으로 산을 찾아다니겠지.

 

 율량중학교를 지나면서 빗줄기 제법 굵어졌다. 더 내리면 도중 포기해야만 할까? 비 맞은 중 모양으로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천을 대비해 올 걸.’ 하며 걱정하며 달리는데 저 멀리 함께 달리기로 한 친구가 앞에 보인다.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었으니 좀 추었겠다.
 까치네로 가는 길에 접어들며 급수를 했다. 1시간 5분 정도 걸렸으니 여기까지 10Km 쯤 될까? 이제 구름사이로 간간히 파란 하늘도 보이며 차량 통행도 뜸해 달리기에 아주 좋은 코스다. 멀리 동림산, 오창 과학 단지, 너른 옥산 들판을 바라보며 미호천 둑을 따라가니 그만이다.

 고등학교 소풍때 교련복을 입고 이곳으로 행군을 왔었지. 목총을 메고 중간 중간 지뢰지대다 폭탄 투하다 하며 숨고 건너뛰고 하면서 이곳 까치네 까지 왔다갔는데. 고수부지에는 농부들이 파, 배추밭에서 부지런히 손길을 놀리고 있고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러닝복을 입고 뛰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아니면 부러운지 운전자들이 하나같이 눈여겨보며 지나간다. ‘그래요, 아저씨들도 뛰어보세요.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몰라요.’

 

옥산다리까지 10Km, 정확히 1시간 걸렸다. 이제 20Km 정도 왔다보다. 다시 급수를 하고 이젠 옥산을 거쳐 신촌리 앞길을 지나간다. 두 달 전 이곳에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장수하시다 돌아가셨다. 방학 때만 되는 외갓집에 가서 일주일 씩 머물며 이곳 들판 원두막에서 외삼촌들과 함께 참외, 수박, 옥수수 등을 먹으며 미호천에 나가 고기를 잡곤 했었다.

 

호계에서 쌍청 앞으로 흐르는 미호천도 확 달라진 모습이다. 우리 어릴 적엔 백사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 하며 멱을 감곤 했는데 이제는 나무가 무성할 정도로 원시림 같았다. 쌍청에서 만수 방앗간까지는 먼 거리인줄 알았는데 달려보니 1Km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까운 길이었든가?

 

다 왔다! 만수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며 몇몇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며 주최 측에 알린다. 친구가 한바퀴 자랑(?)스럽게 돌자고 했지만 이미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접기로 했다. 마이크에서 들린다. “저쪽 동편, 만수초 10회 동문들께서 오늘 체육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청주에서부터 달려왔습니다. 힘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두 손을 들어 흔들며 답례하며 무척이나 흐뭇했다.

 

내가 6년 동안 뛰어놀았던 이 운동장, 이 학교, 그리고 그리운 친구들이 날 반겨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