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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청남대 LSD

by 박카쓰 2008. 7. 13.
  지난 충주마라톤을 다녀온 후 기록에 연연하는 나를 보고 마라톤동료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입상을 할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재가며 재촉하며 달리다가 혹시라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기에 옳다 싶어 좀 천천히 달리되 달리는 거리를 늘려 다소 멀리 가보기로 했다.  

 

  11월3일 토요일 오후! 어찌나 가을햇살이 따사롭고 멀리 바라보는 우암산 자락의 가을 단풍이 고와 보이는지 우회도로를 달려보기로 했다. 지난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이 도로를 달렸지만 오늘은 곱게 물든 벚꽃 단풍과 나무 밑의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달려본다. 청주대 뒷 모퉁이를 돌 무렵, 멀리 부모산 너머로  불타는 저녁노을에 걸 맞는 빠알간 둥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일몰광경을 보기는 정말로 오래 간만인 것 같다. 우회도로를 일주하고 난 후 시간을 재어보니 전에 힘들게 달릴 때와 비교해서 불과 5분 정도의 차이밖에는 나지 않았고 등에는 땀도 별로 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달려야겠구나. 이것이 소위 LSD(Long Slow Distance: 비교적 먼 거리를 천천히 달리기)인가?    

  그리고 오늘, 한동안 나가지 못했던 청마회 정기모임에 나가보았다. 뭐가 그리 바쁜지 근 한달 여만에 나온 것 같다. 그래도 마라톤에 대해 몇 수 배우고 덜 지루하게 달릴 수 있는 터인데... 상대리 다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새로운 코스를 회원님들 대 여섯 분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다소 천천히 달린다. 늦가을 아침인지라 다소 춥고 얼굴이 시리었다. 한 여성동호인이 지난 정기모임에서 청남대를 다녀왔는데 정말로 끝내주었다고 말씀하신다. 말로만 듣던 청남대! 한동안 말썽도 많아 청문회도 열리고 그곳사람들 꽤나 속상하게 하던 청와대 남쪽 대통령 별장! 오늘 그곳을 달린다. 앞에서 이끌어 주시는 윤내과 원장님으로부터 마라톤 健康學 강의를 들으면서 대청호를 끼고 달려간다. 아쉽게도 은행나무 잎은 다 떨어지고 대청호의 물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없지만 고스란히 떨어져 있는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니 올 한해도 큰 업적(?) 남기지도 못하고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올해만큼은 마라톤에 入門하면서 짙은 안개 속과 같던 내 人生 길을 이리 저리 헤매다가 이제 서야 겨우 그 터널을 발견하였으니 어느 해 보다고 값진 한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음'이라는 손가락 모양의 간판을 손으로 포갠 후 오던 길을 돌아올 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대청댐, 저수량이 부족하여 밑바닥을 드러난 대청호와 그 주변에 희어진 머리를 흔들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억새풀, 그리고 아직도 곱디고운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다소 힘든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앞서온 회원님들이 따 놓으신 감을 먹게 되었는데 그 감 맛이 어찌나 맛있던 지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겨울에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광속의 항아리에 넣어 두었던 홍시를 꺼내다 드리셨는데 그때 한 개두어 먹어보았던 그 맛이었다.

  이제 2시간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던 우리들의 레이스를 마무리할 무렵 마라톤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해준 것은 윤회장님께서 마련하신 막걸리와 갓 담은 싱싱한 배추김치, 그리고 오늘이 11월11일 '빼빼로의 날'이라고 여성회원님이 건네주시는 빼빼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