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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전라북도

순백의 미에 넋이 나간 방장산~

by 박카쓰 2008. 7. 13.

눈덮힌 방장산...도대체 언제 다녀 왔더라???    2004.1.25

 

 

  많은 산꾼들이 겨울 산을 좋아한다. 나도 일년 중 雪山을 오르는 것이 제일로 신난다. 물론 추위, 바람, 그리고 찬밥이 산행을 힘들게도 하지만 하얗게 눈덮인 산하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그 고행을 잊게 해준다. 그래서 눈만 내리면 雪山이 나를 유혹하여 밖으로 내몰고 순백의 미에 취해 그 힘든 산을 오르게 된다.  


  저 아랫녘 서쪽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고 이름도 생소한 방장산을 따라 나섰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갈라놓는 이 산은 내장산의 서쪽 줄기를 따라 뻗친 능선이라는데 대전, 논산을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서서히 눈 속의 마을과 산야가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산행을 들뜨게 한다.  



  요즈음에는 별로 볼 수 없는 고드름이 이 농촌 고장의 집집마다 물론 초가집은 아니지만 스레트 지붕에서 떡가래처럼 내려져 그래도 옛 정취를 볼 수 있었다. 길게 자란 고드름을 가지고 칼싸움을 하며 목마를 때 먹기도 했었지... 우리를 실은 버스는 3시간만에 장성갈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10:35). 언뜻 보아도 20cm이상의 눈이었다. 스패치, 스키장갑, 털모자로 무장을 하고 다행히 습한 눈이어서 아이젠은 하지 않고 올랐지만 얼마 오르지 않아 무릎까지 차 오른 눈으로 아이젠을 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서 서서히 호남의 넓은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멀리 수많은 크고 작은 흰 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743m의 정상 봉우리를 포함,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눈밭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축 늘어진 나무 밑으로 기어가기도 하고 헛디뎌 푹 빠지기도 하며 하얀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해본다.


  노송은 눈 무게에 짓눌려 가지를 땅까지 늘어뜨리고 진달래 잔가지엔 설화가 만발해 있으며 길옆의 키 작은 산 죽나무는 한겨울의 보리모양 파랗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특히 이 산에 많은 키 큰 측백나무와 향나무 위에도 많은 눈이 쌓여 나무들 사이로 바라보는 설경도 멀리 바라보는 설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어느덧 확 트인 정상에 올라보니 평야로만 알고 있었던 이곳 지방도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백설의 산이었다. 그래도 바로 밑엔 바둑판 줄 같은 평야지대에 한데 모여있는 흰 지붕의 몇 몇 가옥들이 시골의 한가로운 정취를 말해주고 벽오동 패러글라이등 장소에서는 고창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맑은 날에는 서해 바다도 보인다던데...

  함께 온 고향후배에겐 벅찬 산행이었으리라. 당초 6시간 예상했던 산행이 5시간도 안되어 낭떠러지에 기대있는 임공사를 거쳐 하산지점인 양고살재로 내려왔으니 말이다.(15:25). 실은 점심으로 차가운 김밥 덩어리, 따뜻한 차 한잔도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이 서둘러 내려간 일행에 쫓기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늦었다고 재촉을 하며 닦달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한 몫 했다. 30년 만에 가장 춥다던 설 연휴 날씨가 물러 갔나보다. 이렇게 눈 쌓인 산에 매서운 추위와 바람까지 불었다면 조망은 물론 산행조차도 어려웠을 텐데 오늘따라 바람도 없는 참으로 푹한 날씨였다. 이번 겨울 들어 3번째 눈 산행! 온 천지가 하얀 순백의 미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이런 눈 산행이라면 내 마음도 저처럼 하얗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종일이라도 걷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