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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전라북도

한겨울의 설산 덕유산 종주 27Km(03.12.20)

by 박카쓰 2008. 7. 13.

 사실 덕유산 종주는 03.12.20 했는데 그 때는 카메라를 준비못해 한장도 찍지못했다.

 6년이 지난 어제 바로 그날짜인 09. 12.20  한국의 산하 '산모퉁이'의 산행기에서 그때의 생각이 간절했다. 그 산님께 고마움을 표하며 그날 밤새워 걷고 삿갓봉을 내려오다 넘어지고 그리고 추위에 떨었던...하지만 그 추억만큼은 새록새록 그 님의 사진으로 더 오래 간직 싶다. 

 

 

 

 

 

 

한겨울의 설산 덕유산 종주 27Km(03.12.20)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최근의 날씨가 종주산행을 겁나게 한다. 혹시라도 너무 추워서 아니면 눈이 많이 내려서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걱정된다. 무박산행을 떠나기 몇 시간 전, 고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베푼 송년회도 잠시 후면 눈앞에 펼쳐질 雪능선의 파노라마에 시간만 때우고 돌아와 겨울산행 준비를 한다.

  밤 11시에 출발한 우리버스는 금산을 거쳐 남덕유산 밑자락 영각사에 1시 20분 경 도착하여 미역국으로 간단히 요기를 마친 다음 오늘의 대장정을 시작한다(01:42). 매표소를 막 지나며 저쪽 나뭇가지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와 하얗게 쌓여있는 잔설이 휘날리며 오늘도 날씨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계곡도 모두 얼어붙은 듯, 물소리 하나, 동물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오직 등산매니아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남덕유산의 정상부분에는 철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아마도 700개의 계단이라는데... 구름다리를 놓았던 콘크리트구조물 주변의 낭떠러지 지대와 암릉을 지나면서 오늘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함께 간 형님은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며, 별따러 가자고 했다. 올려다보니 하늘엔 참으로 별도 많았다. 어쩌면 저렇게도 많을까? 그야말로 우주였다. 그 중의 군계일학! 그믐달이 날 반겨준다. 요사이 며칠 새벽 조깅을 하면서 동쪽하늘의 그믐달을 보고 어쩌면 요사이 울적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 친구로 삼아버렸는데 오늘밤도 또 날 맞으러 나왔구나. 그래, 오늘 새벽까지 가는 길에 나의 벗이 되어 날 인도해 주렴.

 암릉의 남덕유산 정상은 바람이 몹시 셌다(03:30 1시간50분 소요). 아직도 한밤중이라 조망은 할 수 없었지만 저 아래 전등불로 미루어 도시, 도로를 알 수 있었고 가까이는 서봉이 검은 그림자로 턱 버티고 서있다.

 

 

 


 

 정상을 내려오는 길은 온통 눈밭이었다. 가는 길을 잘 못 들어 그만 서봉으로 향하고 말았다. 자칫 큰일 날 뻔 했다. 이 추위에 눈밭에서 길을 잃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다시 돌아와 삿갓봉으로 향하며 두터운 파카의 모자로 부는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었고 입 속에서 내미는 입김에 안경에 성에가 끼여 오르내리는 눈길에 두어 번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조심조심 발자국을 띄면서 내려온다.

 제법 널찍한 월성재에서 늦게나마 시린 손으로 더듬더듬 아이젠을 맸다. 진작부터 매었어야 했는데... 오르막에 좀 힘이 들었지만 내려올 적엔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아뿔사! 새로 산 건전지로 헤드라이트에 넣어놓았는데 세시간도 못되어 건전지 약이 다 되어 못쓰게 됐다. 이를 어쩌지...하는 수없이 함께 가는 분을 앞서며 뒤서며 삿갓봉을 우회하여 대피소에 가까스로 내려왔다.(06:04 영각사-남덕유산-삿갓재 4시간 20분소요)


 

 대피소에서 잠시 몸을 녹인 후 컵 라면과 김밥으로 대충 아침을 때운다. 이제까지 너덜거리는 아이젠를 다시 동여매고 스패치를 한 다음 재무장하고 나선다(6:50). 이제부터는 이번 종주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코스, 2년 전 여름철 종주했던 코스인지라 새삼 기다려졌다. 거리로는 향적봉까지 10.5Km! 산행은 두 배를 곱하게 되니 마라톤으로 말하면 하프코스나 다름없었다. 마라톤 연습하는 셈치고 가능한 한 빨리 가보자.

 저 멀리 무룡산으로 올라갈 무렵 먼동이 트고 있었다. 함께 온 형님한테는 죄송했지만 좀 더 높은 곳에서 일출이 보고싶어서 안달이 났다. 좀 더 높이 올라가야지! 혹시라도 서쪽 기슭에서 해가 더 오르면 어쩌나 걱정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정상 바로 못 미쳐 둥근 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껏 일출을 수없이 많이도 보았지만 오늘아침처럼 맑지는 않았다. 정확히 7시27분에서 30분까지 둥근 해가 모습을 다 드러낼 때까지 지켜보면서 소원을 빌어본다. 그져...

 

 

 둥근 해에 비친 남덕유산, 서봉 그리고 가까이 삿갓봉은 눈과 함께 한층 빛나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룡산 정상을 지나며 다소 평전지대인지라 아이젠을 풀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 멀리 중봉 너머 향적봉의 철탑이 보인다. 저기가 끝이지... 하면서 시야가 탁 트인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평평한 곳은 달리고 언덕은 걸으면서 다소 숨은 가쁘고 바람은 세지만 마음속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그래, 이것이 겨울산행의 묘미지...

 능선을 오르내리는 등산로 옆에는 산죽나무도 대나무라고 한겨울에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고 키 작은 나뭇가지 속에 핀 하얀 설화는 크리스마스추리의 흰 솜 같기도 하고, 목화밭의 하얗게 핀 목화꽃 같기도 하고, 봄철 만개한 조팝나무 꽃과도 같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운 지대에서 자란 탓인지 진달래, 철쭉은 다 자라지 못한 채 나뭇가지만 굵은 모양을 한 우리 엄마 손마디 같기도 하다. 동엽령에서 송원삼거리로 오른 무렵 바위지대에서 만난 경상도 산행팀, 과메기를 어린 배추 잎와 김에 쌓은 다음 마늘, 고추도 곁들어 소주와 함께 나의 입에 넣어 주시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으랴! "혼자 지나가셔 불렀지예. 하나 더 싸소."


 

 송원리 삼거리, 백암봉은 조망이 무척 좋았다. 여기부터 백두대간이 갈라지며 이제 멀게만 보이던 중봉이 지척이다. 중봉 바위지대를 오르며 이젠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든다. 그럴 만도 하지... 벌써 얼마를 걸어온 거야. 중봉을 지나 향적봉에 올랐다.(10:40 삿갓재대피소-무룡산-동엽령-백암봉-중봉-향적봉 3시간 50분 소요)

  누가 그랬지... 중첩되어 늘어선 산의 윤곽선을 눈 그리매라고. 감을 듯 말듯 눈을 뜨고 있는 저 모습. 그리움의 표현이라도 했지. 서쪽으로 가까이로는 댐과 어우러진 적상산, 서대산, 멀리는 계룡산, 대둔산도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하늘에 닿아있고, 동으로는 가야산이 그 독특한 봉우리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향적봉대피소에서도 나무젓가락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꽁꽁 얼어있는 찬밥을 먹을 길 없어 컵라면에 얼어붙은 밥 몇 덩어리를 넣어 훌훌 마셔버린다. 함께 온 선배를 기다려야 했지만 내 등산화는 방수가 아니란 것을 산지 몇 년에 처음 깨달았다. 무딘 사람 같으니... 발이 시려워 하는 수 없이 하산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11:25).


 

 백련사로 내려오는 눈길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이젠을 질질 끌며 가파른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혹시라도 삐끗하지 않을까 조심조심 내려오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백련사를 지나(12:40) 다소 길이 평평하여 아이젠과 스패치를 풀어 보지만 발걸음은 자꾸 무거워지고 발바닥도 점점 아파 온다. 이젠 졸리기까지 한다. 원래 졸릴 만도 하지. 지난밤 2시간도 못 잤으니까...이럴 때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분들이 살아온 길을 더듬더듬 살펴보노라면 금새 잠이 달아나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하품이 끝없이 나오며 삼공리로 가는 이 길이 왜이리 지루한 걸까? 시간은 벌써 13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기진을 다한 모습으로 매표소 앞을 지나 주차장까지도 한참을 더 내려와야 했다(14:50,향적봉-백련사-삼공리 3시간 25분소요).


 

  주차장에서는 바람도 없이 따스하다. 멍석을 깔고 소주를 몇 순 배 들이키며 밤새 지나온 덕유평원을 생각해본다. 물론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잠시나마 다른 나라 한 겨울의 흰 설원을 다녀온 듯 하다. 오늘 산행하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 그믐달, 설원의 종주코스, 정상에서의 산 그리매, 그리고 부모님 이 모두가 더 커다란 그리움으로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