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이제 웃으며 살렵니다!
어머님, 오늘 고향 땅 어머님 곁에 갔었어요. 아무 말씀 없으시데요. 병상에 누워 계실 적에도 이리저리 손을 지으시며 어서 오라고 하시더니...
날씨가 찬데 추우시죠? 아버님과 함께 계시니 괜찮으시다구요? 반수를 못 쓰시게 되시고 어쩌다 내 이리 됐느냐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시더니 이젠 수족도 멀쩡하니 걱정도 없고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시죠?
그래도 자식 걱정은 지금도 하실테죠? 저 아래 도라지 심은 것 내가 안 캐준다고 아직도 저렇게 버려 두고 있다고 걱정하실테고 막내네 아직 아이소식 없다고 한숨쉬고 계실 테죠.
평생 술 좋아하시는 신랑 만나 내 뱃속으로 낳은 4남매 잘 키워보겠다고 이 밭고랑 저 산비탈에서 밤에도 호미자루 놀리시길 한 평생, 자식들 다 자라 제 밥벌이 할 적에도 그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나라도 더 싸보내려고 그토록 일을 손에서 안 놓으시다가 쓰러지실 적에도 '자식 걱정한다고 알리지 마라' 하셨던 어머니! 진정으로 부모는 자식들한테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겁니까!
인생은 生老病死 라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길이지만 한 달만이라도 함께 살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남습니다. 그래도 저희들, 무척 다행이라도 생각합니다. 졸지에 돌아가시는 수도 있는데 비록 병상에서의 슬픈 삶이었지만 7개월 동안 어머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餘生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한동안은 어머님께서 제 곁을 떠나시지 않데요. 겨울 찬바람과 함께 자주색 긴 반코트에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랜드로바 신발을 신고 핸드백엔 손자들 줄 과자봉지 넣으시고 꼬부라진 허리로 어정어정 걸음으로 한발한발 내딛으시며 아파트 문을 여시며 "큰애야, 나왔다!" 하실 것만 같으신데...
살아 계실 적에도 늘 "내 죽으면 우리 큰애가 무척 울꺼야." 하셨죠? 그래요. 정말로 올 1년은 무척이나 울었답니다. 오고가고 차 속에서, 병 문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어머님을 보내고 겨울 긴긴 밤에, 이렇게 어머님께 글 올리면서도... 하지만 어머님, 전 더 이상 울지 않으렵니다.
이틀후면 새해인데 더 이상 엄마생각 안 하렵니다. 산 정상에서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겹겹의 산자락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머님도 그렇게 그리움 속으로만 간직하렵니다.
어머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늘 내 가족들과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생전에 어머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셨던 그 모습, 그래도 내 서방이라고 그토록 챙겨주셨던 아내로서의 모습, 자식들이라면 끔찍이도 여기셨던 어머니로서의 모습대로 저도 우리 식구들에게 그렇게 하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셨던 대로, 남이 들어 싫은 소리 안하고, 남 자식들도 내 자식처럼 아껴주라는 말씀도 깊이 깊이 새기려 합니다.
모레가 용순이 생일이랍니다. 어머님께서 계셨더라면 그 날 청주에 나오셔 함께 지내실 텐데... 하지만 제가 동생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또 모이면 어머님 생각이 나겠지만 이제는 어머님 생전의 모습을 하나 둘 지우며 웃으며 살아가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님! 아버님과 생전에 못 다한 이야기 나누시며 이제는 자식걱정 마시고 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2002. 12. 29 새벽 (02.10.21 작고)
불효자 해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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