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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늘 처음 만날 때처럼(2001년 담임한말씀)

by 박카쓰 2008. 7. 12.

늘 처음  만날 때처럼 

                               교사    박 해 순  

 

얘들아! 지난 일이지만 3월 2일은 새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단다. 물론 1월1일도 아니고 설날도 아니지만 나와 운 없게도(?) 일년을 같이할 너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간 녹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교정의 응달속 눈도 그 날은 많이 녹아서 덕지덕지한 내 구두를 말끔히 씻어주었고 너희들을 보다 빨리 만나고 싶어 3학년 5반 교실로 달려가 보았지. 새 학년을 맞아 부쩍 커지고 의젓해진 너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서 나에게서 뭔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신철화 선생님이나 나나 너희들과는 처음 만나는 시간이었지. 그리고는 올 한해 늘 오늘 같은 설레임과 기대 속에서 생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다보니 벌써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내년 2월이면 이 학교를 떠나게 되네. 사실 난 올해 처음으로 담임을 면하고 부담임이지만 올해부터는 제도가 바뀌어서 앞담임, 뒷담임으로 여학생들의 담임 노릇을 해왔지. 하지만 내가 너무 무서워서(?)인지 깐깐해서 인지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있더라. 실은 내가 딸이 없어서 무척 가까이 하고 싶었는데... 항상 너희들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있다는 생각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신세대인 너희들의 다양한 요구를 귀담아 듣고 너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아마도 타성에 젖어서인지 아니면 성의가 부족해서 인지 한해가 저물어드는 이 무렵이면 여느 해보다 더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너희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겠다'며 날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너희들이 오히려 나의 스승이요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지루한 공부와 스트레스 받는 시험의 부담을 그래도 잘 참아가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으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엊그제는 올 들어 첫눈이 내렸지. 너희들은 공부하다말고 들떠서 밖으로 나가자고 야단을 떨고...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날 약속을 할까?' '첫눈이 오면 왜들 그렇게 기뻐할까? 아마도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길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남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덮어준다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