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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강원도

용의 이빨 닮았다는 설악산 '용아장성'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네요(01.9.22).

by 박카쓰 2008. 7. 12.


산행초짜가 비탐이 뭔지도 모르고

면바지를 입고 감히 용아능선을 타다니...ㅠㅠ

돌이켜봐도 살아온게 다행이다.

 






지난여름 지리산 종주 武勇談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한 친구가 "설악산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갔다왔냐?" 고 묻어 보길래 난 설악산 많이도 다녔지만 외설악 探査型 山行이 전부라고 했더니 "그럼, 거기 다녀오고 난 후 산 이야기를 하자."는 거였다. 도대체 어떤 코스이길래...    

 



  고공 공포증도 좀 있는 편이고 다친 오른 팔이 아직은 어줍어서 다소 도전하기가 겁이 나는 지라 백두산장에 가보니 그 사장님 왈, "전에는 험하여 사고도 많이 났지만 이제는 우회등산로가 있어서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코스라 하면서 평소 운동을 하시느냐?"고 물어 보길래 마라톤한다고 했더니 "그럼, 뭐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그래도 걱정되어 우암산을 몇 차례 뛰어 올랐고 긴 산행이니 만큼 먹을 것을 풍족히 하여 9월22일 오후 9시30분 청주체육관 앞으로 나갔다.


  이윽고 우리 버스는 오전 2시경 인제군 한계리에 도착하여 간단히 아침을 마치고 용대리부터 깜깜한 한 밤중에 우리의 산행은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대청봉까지 이르기까지 웅덩이(潭)가 100개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백담사까지는 가뭄철이었지만 계곡의 물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으며 백담사입구에서 잠시 쉬며 하늘을 보니 옛날 제사지내다가 잠시 更水하기 전 마루에 나와 하늘을 보았을 때처럼 수억만 개가나 되는 이름 없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렴동 대피소로 가는 길에 저마다 램프를 들고 산길을 따라 걷는 모습이 석가탄신일 연등행렬처럼 한 줄로 쭉 늘어져 긴 꼬리를 물고있었다. 영시암을 지나 수렴동대피소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날이 거의 다 새었고 이제 새벽 6시! 수렴동대피소를 바로 지나 가파른 언덕배기를 10여분 오르고 났더니 내 눈앞에 저 멀리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이 고개를 들고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아! 이게 용아능선!
 

 


 


  이윽고 그 무시무시한 능선 타기가 시작된다. 뜀바위 인지 촛대바위인지 이름도 새겨볼 만한 여유도 없이 그저 남이 어떻게 올라가나 보고 나도 그 사람 시늉을 내며 겨우 올라간다. 이런 산에 올 때는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행렬의 앞에 서라고 들었지만 왠지 겁이 나고 몸이 오므라들어 난 우리일행 중 거의 마지막에 쳐져 있었다. 어느 메쯤 간신히 따라붙는데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지체되고 있었는데 저 앞을 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밀려있고 툭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돌아누운 굴뚝 모양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밑에 등반대장의 지시에 따라 배낭을 풀고 로프를 허리에 매워주면 납작 엎드려 빡빡 기어서 그곳을 통과하고 하고 있었다. 아하! 저게 바로 개구멍바위구나. 저것 통과 못하면 다시 온 길을 혼자 내려가야 한다니 돌아 설 수도 없고 차례는 기다리다 못해 지루하고... 어릴 때 예방주사 맞을 때 면 안 맞으면 병 걸릴 것 같고 내 차례는 서서히 다가오고 얼마나 아플 까 생각하면? 역시 맞을 매라면 일찍 맞으랴 했건만 아 글쎄, 뭐가 좋다고 이곳까지 와서 목숨까지 담보로 하고 이 죽을 고생한단 말인가? 미친 놈!    
 

  이윽고 내 차례! 사람이 워낙 많이 밀렸는지라 배낭을 맨 채로 그냥 엎드려 지나가려니 위로는 바위에 닿고  절벽아래로는 눈도 돌리지 못하고 손은 덜덜 떨리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빡빡 기어가는데 ... 얼마 후 "아저씨! 이제 이 로프 잡으세요." "아이쿠, 나 살았나?"   
 개구멍바위 통과 후 잡을 곳이 마땅치 않은 1.5m 정도의 짧은 암벽을 한 여성 가이드가 내 엉덩이를 쳐주며 오르고 난 후 이제 조금은 살 것만 같았다. 아! 남쪽으로는 멀리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이 유럽 중세기 성벽처럼 둘러쳐 있고, 북쪽으로는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는 공룡능선과 매월당 김시습이 삭발 입산했다는 오세암, 칼날처럼 뾰족한 수많은 기암괴석을 바라다보니 웬 지 가슴이 울렁이며 신이 온갖 妖術을 부려 천하의 名山 絶景을 한데 모아 이곳에 갖다 놓은 듯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한참을 둘러본 후 평온을 찾아 그곳을 배경으로 처음으로 사진도 찍어본다. 




지금  생각해봐도 말도 안돼.

면셔츠 면바지입은 등산초보가

멋도 모르고 그 험한 용아장성을 오르다니...ㅠㅠ





  몇 곳의 암벽지대를 두손이 발이 되어 네발로 더 오르내리며 점심 먹을 봉정암에 다다를 즈음 아니, 이게 또 뭐야? 천길 낭떨어지잖아. 저 밑이 가물가물 해 보였다. 그래도 군대서는 레펠을 타며 잘도 내려왔는데 이젠 겁부터 나니... 그래도 저 아래 가이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바위가 좋습니다. 신발이 바위에 달라붙지요. 예, 잘하고 있습니다." 오른 손으로는 자일을 잡고 왼 손으로는 바위를 잡으면서 다음에 내디딜 곳을 보며 마지막 난코스를 지나간다. 봉정암에 도달하니 오후 1시20분! 수렴동대피소 입구에서 '용아능 5.9Km 소요시간 8시간' 이런 표지판을 보고 왜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나 의아했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만하다.
 

 


 


  우리 나라 사찰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봉정암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하산 길에 오른다. 하산 길은 남보다 일찍 내려가 막걸리를 먹을 양으로 경보선수가 되어보았다. 구곡담계곡을 내려가면서 위로 올려다보니 아까 우리가 지나간 용아장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내가 오늘 운(?)좋게도 저 험준한 코스를 지나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계곡의 제법 규모가 큰 폭포들의 물줄기도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백담사 지나 버스로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6시! 이제 15시간의 긴 산행은 끝났다. 어느 사람은 다시 와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뭘 모르고 이곳을 찾아와 秘境은 맛보았으나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내가 용아능선에서 그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다음 번엔 공룡능선, 서북능선을 타고 싶다는 미련만이 남는다.

 

 



 

용의 이빨 닮았다는 설악산 '용아장성'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네요. (01.9.22-23) 200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