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엔 작은 파티가 있었다. 올해 충북서예대전에서 입상하신 두분을 축하하는 파티였다. 늘 열공하시는 후연님과 벽송님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도 임회장님께서는 詩 낭송을 빼놓지않으셨다.
정지의 힘
– 백무산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창비시선, 2020)
* 감상 : 백무산 시인. 본명은 백봉석.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 출신 시인으로 크게 관심을 받아 왔으며 박노해 시인과 함께 80년대 노동을 주제로 하는 시를 발표하며 노동자들의 삶과 생각을 대변해 온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해설]
멈추면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달리는 자전거처럼,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야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에서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잠시 멈춰 서보자는 것, 무언가를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가져보자는 것, 희망찬 미래로만 내몰 것이 아니라 잠시 시간을 멈춰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한번 생각 해보자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목소리 높여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꽃을 피우는 일, 그것은 바로 그 ‘정지된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말하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는 마지막 문장이 큰 우레 소리로 들려오는 시편입니다.
이어서 인당선생님께서는 도종환님의 이 詩를 소개하셨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해설]
도종환의 신작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에는 이렇듯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어김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 영혼을 담금질하는 시편들이 담겨 있다. 이 시집은 "내 인생은 하루 중 몇 시쯤인가"란 물음에서 시작했다고 시인은 말한다. 뜨겁고 치열했던 낮 12시 전후를 지나 오후의 시간은 의기소침한 채 지냈다고 했다. 저무는 시간만 남았는데 이대로 어두워지는가.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는 시간이 한 번쯤 허락된다고 믿고 살자며 시인은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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