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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12월의 시(詩)로 겨울을 시작합니다

by 박카쓰 2023. 12. 1.

어제 11월 달력을 떼어내니 달랑 한장 남아있다. '또 한해가 가는구나'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래도 아직 한달이나 남아있으니 그간 베풀어주신 사랑에 고마워하고 올 한해 마무리 잘 해봐야겠다.

탄생 500일을 맞은 둥이들이 한껏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있다.

 

겨울에 접어든다는 12월...

시인들은 뭐라고 노래했을까 찾아봅니다. 

 

 

 

12월의 시 -  이해인/수녀, 시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요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담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나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요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크리스마스와 연말 기분 내려고 서실 입구에 내걸었다.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12월엔 크리스마스꽃 포인세티아와 함께 한다.

 

 

 12월의 기도    -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1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크리스마스의 원조, 한라산의 구상나무

 

 12월의 시   - 구상나무

12월엔 산속 깊은 곳
장작불로 방 따뜻하게 지피는
하얀눈 소복히 쌓인 산골짜기 산막으로 가고싶다.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나무 장작 한토막 한토막을 불속에 집어 넣으며
정답게 이야기 나누었던 그리운 모습들을
훨훨 타오르다가
숯이 되어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하나 둘씩 떠 올려 보고 싶다.

 

날아가는 새들에게도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들에게도
12월이, 1월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는 못 하겠지만

 

어 가기만 하는 어둔 밤길 따라
아궁이 속 사그러지는 숯불 속에 묻어 둔
하나, 둘 구워지는 구수한 밤톨처럼
살며 느꼈던 정들을 한겹 두겹 벗겨 내며

 

내 눈길 속에 다가오는 사람들의 따뜻했던 인정들을
다시 한번 생각 하면서
새해에는 나도 그들에게 따뜻한 장작 숯불처럼
참 인정 많고 서글서글한 좋은 사람이였었노라고
기억 되었으면 좋으련만
12월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가는구나.

 

 

12월  - 정연복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뒷맛이 개운해야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뒤끝이 깨끗한 만남은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두툼했던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걸려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보석같이 소중히 아끼자



이미 흘러간 시간에
아무런 미련 두지 말고



올해의 깔끔한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자.



시작이 반이듯이
끝도 반이다!    

 

 

행복한 12월 - 정용철 시인

나는 12월입니다.
열한달 뒤에서 머무르다가 앞으로 나오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았네요.



돌아설 수도,
더 갈 곳도 없는 끝자락에서
나는 지금 많이 외롭고 쓸쓸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는 지금
나의 외로움으로 희망을 만들고
나의 슬픔으로 기쁨을 만들며
나의 아픔으로
사랑과 평화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나를
"행복한 12월"이라 불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