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과 함께 조선 4대 명필의 한분인 원교 이광사! 그런데 김정희의 추사체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원교 이광사가 가장 한국적인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원교 이광사의 발자취를 다시 돌아보고있다.
원교 이광사(1705~1777)는 조선 후기 대표 서예가다. 함경도에서 유배 생활 중 완도 신지도로 이배돼 15년을 보내다 72세 나이에 신지도에서 생을 마쳤다.
신지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서체를 모방하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서체의 모태가 된 ‘동국진체’와 서예의 체계적인 이론서인 ‘서결’을 완성했다. ‘서결’은 대한민국 보물 제1969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그는 추사 김정희에 의해 혹독하게 비판을 받았다. 동시대 사람도 아니고 이광사가 죽은 후 10년뒤에 태어난 추사는 왜 그리 못마땅했을까? 추사는 제주도에서 8년 유배생활을 했는데 이광사는 무려 23년이나 유배지를 돌다 결국 유배지에서 죽었다. 아무리 서체와 사상이 다르다지만 당시대 최고의 석학이던 추사의 오만함도 엿보인다.
해남 대흥사 대웅전에 있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
힘이 넘친다!
아이러닉하게도 대흥사에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와 추사 김정희 '무량수각' 글씨가 걸려있다.
이광사의 사찰 현판 글씨는 전구 사찰 여러곳에 남아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다.
원교의 도원도...그는 산수화에도 뛰어났다.
이광사의 초서...광서(狂書)? 미친 글씨체라며 김정희를 비롯한 서예가들이 혹평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소론이었기에 노론이 2~300여년 집권하다보니 후대까지 제 대접을 받지못했다.
2023년 전남 완도군은 원교 이광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사상과 예술 세계를 알리고자 ‘원교 이광사 문화거리’ 조성 사업 준공식을 가졌다.
‘무명의 길, 솔향의 길, 묵향의 길’ 등 거리(1천380m)와 쉼터 조성, 신지중학교 담벼락을 따라 이광사의 글씨와 작품을 새겨 뒀다. 이광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원교목) 정비 및 유배지도 복원했다.
인당샘이 지난 8월4~5일 1박2일로 원교 이광사 서맥전을 다녀왔다.
해남 대흥사...
박카스도 내년 봄엔 저 두륜산, 대흥사 그리고 윤선도의 녹우당을 돌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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