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시인과 함께 하는 책방통통' 오늘은 작고한 시인의 유고시집을 가지고 진행한다. 엊그제 시인의 2주기 제를 올리고 오늘 꿈꾸는 책방에서 북콘서트를 갖는단다. 고인을 추모하는 참 의미있는 행사다.
아름다운 서정으로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하며 충북 문단을 견인했던 조원진 시인의 유고시집. 타계 1주기를 맞아 유고 90여 편을 모아 묶었다.
구절초의 노래
가을산 벼랑 끝에
구절초 한 떨기
청상의 소복 빛깔로 흔들리고
물벌레는 구절구절
꽃잎마다
에도라운* 가락을 풀어내는데
구월에 베어 약에 쓴다는
홀로된 누이의 치맛자락 같은
저 눈물빛 꽃을
먼길 걷다가 지쳐서
행여 이 몸 병 깊어지면
곁에 두고 하염없이 흔들리며
이 계절 저물어야겠네.
* 에두릅다 : '애달프다'의 방언
시론詩論
대인은 살고
소인은 쓴다했으니,
허구한 날 詩 쓴다고
詩,詩 하다가
그것도 부질없고 시시해지는 날
한 구절 솔바람 소리같은
詩나 되어
그냥 살았으면 하네
굳은살
내 어린 날 노을 녘에 아버지는
두레박 샘가에서 흙 묻은 발 씻으시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날카로운 칼날로
뒤꿈치의 굳은살을 조심스레 베어 내셨다.
또 어느 노학자는
종일 서재에 앉아 글을 쓰다가
검지 첫째 마디에 생긴 굳은살을
경건한 모습으로 베어 내고 있었는다는 것인데
조금은 징그러워 보이던 그 굳은살이
생의 무게와 비례하여
땅바닥과 맞닿으며 생기는
역학관계의 결과인 것을 몰랐다.
그렇다.
무엇인가 일가를 이루어
세상의 우러름을 받는 이들의 몸 어디엔가는
칼로 베어 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굳은살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훨씬 넘긴 지금
물러터진 내몸의 어느 한구석에도
못 박인 굳은살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는
나는, 무엇인가.
행장行狀
아버지는 천둥지기 마른 물꼬에
낡은 삽 한 자루 덜렁 꽂아 놓고
괴나리봇짐도 하나 없이 마실 가시듯
그 먼 길 훌훌 떠나시며 이르셨다
얘야.
곳간에 잔뜩 쟁여논 게 아까워서
송장이 다 되어서도 눈을 못 감는
고래등 집 병칠이 아들 놈 꼴을 봐라
갈 길이 멀수록 짐이 가벼워야
떠나기가 수월하니라
성암요양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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