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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책방통통]유고시인 조원진 북콘서트

by 박카쓰 2022. 3. 16.

'김은숙시인과 함께 하는 책방통통' 오늘은 작고한 시인의 유고시집을 가지고 진행한다. 엊그제 시인의 2주기 제를 올리고 오늘 꿈꾸는 책방에서 북콘서트를 갖는단다. 고인을 추모하는 참 의미있는 행사다. 

 

 

아름다운 서정으로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하며 충북 문단을 견인했던 조원진 시인의 유고시집. 타계 1주기를 맞아 유고 90여 편을 모아 묶었다.

 

 

 

동네 책방 '꿈꾸는 책방'

박카스에게는 '참새와 방앗간'이다.
 
 
 
 
 
이날 고인의 남매, 지인들, 충북지역작가들과 함께 했다. 
 
 
 
조원진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2000년 제7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공모에서 시 「그해 겨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충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시집 『기러기 부리에 묻어온 겨울』을 펴냈다. 2020년 3월 16일 타계했다.

 

구절초의 노래 

 

가을산 벼랑 끝에 

구절초 한 떨기 

청상의 소복 빛깔로 흔들리고 

물벌레는 구절구절

꽃잎마다 

에도라운* 가락을 풀어내는데 

 

구월에 베어 약에 쓴다는 

홀로된 누이의 치맛자락 같은 

저 눈물빛 꽃을 

 

먼길 걷다가 지쳐서 

행여 이 몸 병 깊어지면 

곁에 두고 하염없이 흔들리며 

이 계절 저물어야겠네. 

 

* 에두릅다 : '애달프다'의 방언 

 

 

시론詩論 

 

대인은 살고 

소인은 쓴다했으니, 


허구한 날 詩 쓴다고 

詩,詩 하다가 

 

그것도 부질없고 시시해지는 날 

한 구절 솔바람 소리같은 

詩나 되어 

그냥 살았으면 하네

 

 

굳은살

 

 내 어린 날 노을 녘에 아버지는 

두레박 샘가에서 흙 묻은 발 씻으시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날카로운 칼날로 

뒤꿈치의 굳은살을 조심스레 베어 내셨다.

 

또 어느 노학자는 

종일 서재에 앉아 글을 쓰다가 

검지 첫째 마디에 생긴 굳은살을 

경건한 모습으로 베어 내고 있었는다는 것인데 

 

조금은 징그러워 보이던 그 굳은살이 

생의 무게와 비례하여 

땅바닥과 맞닿으며 생기는 

역학관계의 결과인 것을 몰랐다. 

 

그렇다.

무엇인가 일가를 이루어 

세상의 우러름을 받는 이들의 몸 어디엔가는 

칼로 베어 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굳은살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훨씬 넘긴 지금 

물러터진 내몸의 어느 한구석에도 

못 박인 굳은살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는 

나는, 무엇인가. 

 

 

 

 

행장行狀

 

아버지는 천둥지기 마른 물꼬에 

낡은 삽 한 자루 덜렁 꽂아 놓고 

괴나리봇짐도 하나 없이 마실 가시듯 

그 먼 길 훌훌 떠나시며 이르셨다

 

얘야.

곳간에 잔뜩 쟁여논 게 아까워서 

송장이 다 되어서도 눈을 못 감는 

고래등 집 병칠이 아들 놈 꼴을 봐라

 

갈 길이 멀수록 짐이 가벼워야 

떠나기가 수월하니라

 

 

성암요양원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