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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퇴계 이황의 매화梅花 詩 두편(feat.두향이)

by 박카쓰 2023. 3. 17.

청풍호에 있는 두향이 묘


퇴계 이황의 매화 시 2편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퇴계 이황이 두향에게 보낸 시-壬子正月立春(임자년(1552년) 정월 초이틀 입춘)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

 


[전해내려오는 퇴계 이황선생과 기생 두향이 이야기]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답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고 합니다.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답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두향이는 18살 때였다고 합니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답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답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드디어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고는 시 한 수를 썼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했습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 하였답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 것이었습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습니다.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입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 身 應 是 明 月 . 幾 生 修 到 梅 花).

선생이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답니다.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선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답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습니다. 이 우물 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답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답니다. 지금도 퇴계선생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답니다. 선생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애닳은 사랑을 잊지는 않는 것이 반가의 禮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