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니 불금이라도 별 느낌이 없네.
그도 그럴것이 허구한 날(허구헌날 x) 일요일이니...
오전 몸펴기운동에 참여하고
오후 청주예술의전당 단재서예대전 전시회 준비에 가보고
청주문화원 청녕서화전 작품 철수하고 돌아와
잠시 바둑보며 쉬려니 졸리기만 따분하네.
그래! 이럴때 하는 것이 독서다!!!
오늘밤 시인과 함께 읽을 책을 미리 읽어봅니다.
저자 육근상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삶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2016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창작지원금을 수혜했고,
2017년 시집 『만개』가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절창』(2013), 『만개』(2016)가 있다.
작성자 하재일
우술에 살며 보았던 흔적들을 서정적인 필담으로 그려낸 이번 시집에서는
서사를 담고 있는 산문시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에는 다양한 구어체 충청도 언어가 지닌 내면적인 해학과
사물과 인간의 서정이 하나로 융합되어 발화하는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생강나무 남편
"시루봉 오르는디 생강나무가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하는 거였다 나도 오르다 말고 비스듬히 서서 뭐라고 뭐라고 했던 것인디 뒤 따라 오르던 각시가 저니 뭐랴 누렇게 떠갖고 뭐라 그러 길래 그렇게 중얼거린댜 날도 좋은디 니려오다 간재미 무침에 막걸리 한잔 허구 가랴 그러자 각시도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 같은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럴 때 나는 생강나무 남편 같아서 각시는 얼른 내려 보내고 비탈 길 허름한 집 한 채 얻어 살며 몇날이고 피고 지고 싶은 거였다"
개운한 사랑
각시는 조금만 더부룩해도
끄억 끄억 나 좀 따 줘바요
바짝 붙어 앉아 치대는 거였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의처럼
아니 뭘 먹었길래 소화도 못 시키고 헛구역질이랴
어깨부터 두드려 쓸어내리며 손 주무르다
엄지손가락 실감아 바늘로 콕 찌르면
검붉게 흐르는 핏물 바라보다
쳇지 쳇지 거봐 체한 거 맞지
그려 그려 쳇구먼 쳇어 장단 맞추어
덩달아 끄억거려 보듬어 주면
흡족해 하다 잠들고
새벽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나
도시락 싸고 와이셔츠 다리고
머리감고 출근 준비로 바쁜 거였습니다
사랑은 쳇기 같은 것이어서
어깨 두드려주고 팔 쓰다듬고
손 주물러줘야 개운해지나 봅니다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곡우
얼마나 독한지 땅개라는 별명으로 살더니
아랫집 살며 밤낮으로 어지간히 괴롭히더니
가뭄 길어진 날 입원했다며 전화 왔습니다
지가 하지 못하고 아들 시켜 다 죽어가는 소리로 왔습니다
즈 집 앞 지나려면 통행세 내야 한다고
50년 전 뜯긴 5원 꼭 받아내야지 올라간 것인데
호랭이 물어갈 년 아프지나 말든가
아이고, 쌍눔시키 난 이렇게 늙었는디 하나도 안 늙었네
얘기 듣던 젊은 여자 호호호 밖으로 나가니
작은며느리랍니다
요새 이런 며느리 어디 있느냐 문틀 놓아둔
난 잎에 말 건네자 금방 목이 멥니다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빗소리로 훌쩍입니다
가래울
성당 다녀온 각시가 뭣혔냐 묻기에 넘이사 뭣 헌게 왜 궁금헌 것이냐 혔더니 여태껏 빨래혀주고 밥혀주고 애까지 놓아줬는디 넘이라니 아이고 분햐 분햐 그러더니 오늘 크리스마슨디 뭣혔냐 또 묻기에 어둥이골 김시인 허고 돼지 껍데기 볶아 즘심 겸 소주 둬병 마시고 헤어졌다 허니 아무 소리 읎이 한 참 들여다 보다 시방은 뭣혀고 싶냔다 솔직히 말혀도 되냐 혀니 솔직히 말혀도 괞찬다 허여 날도 춥고 눈발까지 날리니 오디 콩밭에 나가 꿩이나 멫마리 잡았으면 좋겄다 혀자 그렇게 혀 그렇게 허셔 이 화상아 그렇게 혀라 구들구 떠대 밀어 팽나무 아래까지 왔다 팽나무에는 길다란 쇠 종 매달려 있어 뜻 헌 바 잘 되지않는 날이면 이마빡 들이 받아 보기도 혔던 것이서 오늘은 가래울 이 작은 마을에서 꿩 잡으러 가자 꿩 잡으러 가자 쇠 종은 울린다 웽뎅그렁 울리는 것이다
사랑가
나 죽으면 워떨 거 가텨
그런 소리 허지 마
워떨 거 같은지 얘기 혀 봐
워떠긴 내 안의 모든 것이 째져라 울어 제끼겄제
그려 그럼 날 겁나게 사랑하는 개벼
사랑은 뭐 미운 정네미 고운 정네미 죄 눌러붙어 있어 그
라겄제 겉에만 눌어붙어 있어 그라 간디 인자 뻿속까지 눌
어붙어 있어 그라겄제
그란디 오째 나헌티는 비아냥 걸리는 소리루 들린댜 허
긴 화신이년은 지 신랑헡니 물어 봉께 단박에 저리 가 꼴도
보기 싫응께 그라더랴 그라기도 허겄제 삼십오 년째 살고
있응께 뒈지게 싫기도 허겄제 그래도 당신 그렇게 말헝께
빈 말이래두 싫지는 않네 그랴
잠 속으로 막 들어갈랴구 허는디 마지막 허지말어야 헐
말 뱉고야 말었으니
근디 말여 온 몸띵이가 다 울어제께두고 그 흔헌 눈물 한방
울이 안 나올 거 가텨 큰일이랑께
머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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