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방에서 시집 읽기
지난번 친구 취임식으로 못갔더니
한달만에 자리에 함께 하네.
그새 새로운 얼굴들로 바뀌고...
결국은 그 시집 반쪽 밖에 못 읽었네.
오늘은 이 詩集이다
나는
나의 생명은
한 권의 노트
가격을 정할 수 없는 한 권의 노트
나의 공부는
노트에 써넣은 글
아름답게 열심히 노트에 써넣은 글
내게 세련된 멋은
노트의 장정
멋있고 밝은 노트의 장정
에헴. 나는 걷고있다
노트를 끼고 20세시의 원시 시대를
종종총총 터벅터벅 걷고 있다
수줍어하며 걷고 있다
운명에 대하여
풀랫폼에 줄 서 있다
초등학생들
초등학생들
초등학생들
초등학생들
떠들며 장난치며 먹으면서
'귀엽네'
'생각나네'
플랫폼에 줄 서 있다
어른들
어른들
어른들
어른들
보며 말하며 그리워하면서
'겨우 50년과 5억 평방킬로미터지'
'생각나네'
플랫폼에 늘어서있다
천사들
천사들
천사들
천사들
말없이 응시하며
말없이 빛나면서
cf. 천상병 시인의 歸天과...
그림
못 건널 것 같은 강 저편에
못 오를 것 같은 산이 있었다
산 저편은 바다처럼
바다 저편은 거리처럼
구름은 어둡고----
공상(空想)은 죄일까
하얀 액자속에
그런 그림이 있다
봄(春)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오순도순 하얀 집들이 있었다
산책을 권하는 오솔길이 있었다
내리지도 않고 타지도 않은
논밭 한가운데 역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그러나
양로원의 굴뚝도 보였다
구름 많은 3월 하늘 아래
전차는 속력을 늦춘다
한순간의 운명론을
나는 매화 향기로 바꾸어놓는다
예쁘장한 교외 전차 연변에는
봄 이외에는 출입금지다
해질 녘
아무도 없는 옆방에서
누군가 부른다 마치 나인 것처럼
나는 서둘러 문을 연다
이쪽은 어두운데
그곳엔 밝게 햇살이 비치고 있어
지금 막 누군가 떠나간 참인 듯
그림자가 슬쩍 눈을 스친다
하나 내가 쫓으면 이미 아무도 없고
별다른 것 없는 해질녘이 된다
꽃병엔 먼지가 쌓였다
창문을 여니 하늘이 밝은데 거기서도....
누군가 부른다 나처럼
두개의 4월
나는 4월에 학교에 들어갔다
4월에 무슨 꽃이 피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4월에 학교에 들어갔다
조리주머니에 이름표를 달고
나는 4월에 여자와 헤어지지 못했다
4월에 무슨 꽃이 피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4월은 비가 많이 왔다
우리는 밤마다 차를 마셨다
4월에 납치범은 전봇대 그늘에서 웃고 있었다
4월에 욧잇은 차고 축축했다
*욧잇 ; 요의 안쪽에 시치는 흰천
만약에
만약에 머리가 엉덩이라면
팬티는 모자가 되겠지
만약에 땅이 하늘이라면
무지개는 터널 속에서 뜨겠지
만약이 6이 1이라면
6학년생은 1학년생이다
만약에 돈이 나뭇잎이라면
은행은 푸른 숲이다
만약에 대낮이 밤이라고 한다면
어른이라도 오줌을 쌀 거야
만약에 당신이 나라고 한다면
이 노래를 하는 이는 당신입니다
소네트 62
세계가 나를 사랑해주기에
(잔혹한 방법으로 때로는
상냥한 방법으로)
나는 언제까지나 혼자일 수 있다
내게 처음 한 사람이 주어졌을 때에도
나는 그저 세계의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내게는 단순한 슬픔과 기쁨만이 분명하다
나는 언제나 세계의 것이니까
하늘에게 나무에게 사람에게
나는 스스로를 내던진다
마침내 세계의 풍요로움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나는 사람을 부른다
그러자 세계가 되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사라진다
* 소네트(Sonnet);서양
4/26(금)
이십억 광년의 고독
인류는 작은 공(球)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사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學而時習 > 문학동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읽어주는 남자 '이종수시인'과 함께 마치며 (0) | 2019.05.25 |
---|---|
[雨述筆談] 육근상 詩人(19.5/10,금) (0) | 2019.05.11 |
[詩]스스로 죽어가는 사람 (0) | 2019.03.09 |
[시읽기] 시로 납치하다(19.3/8,금) (0) | 2019.03.08 |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박산호 著 (0) | 20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