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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시읽기] 시로 납치하다(19.3/8,금)

by 박카쓰 2019. 3. 8.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당신을 시로 납치할 거야.

시어와 운율로 당신을 사로잡고,

제비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이마에서 녹는 눈으로 당신의 감정을 위로하고,

내 시를 완성하기 위해 바람 부는 해변에 당신을 혼자 서있게 할 거야.

당신의 이름을 시에 쓸때마다 행갈이를 할 거야...'



그리고 시인들의 물음에 답해야한다.

인생은 물음을 던지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고







   에드윈 마크햄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넓어지는 원

라이너 마리아 릴케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사막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위험

엘리바베스 아펠


마침내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워험보다

봉우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





        더 푸른 풀

                    에린 핸슨


건너편 풀이 더 푸른 이유가

그곳에 늘 비가 오기 때문이라면,


언제나 나눠 주는 사람이

사실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가장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눈물 젖은 베개를 가지고 있고


당신이 아는 가장 용감한 사람이

사실은 두려움으로 마비된 사람이라면,


세상은 외루운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함께 있어서 보이지않는 것이라면,


자신은 진정한 안식처가 없으면서도

당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들의 풀이 더 푸르러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그 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라면,

 

다만 기억하라, 건너편에서는

당신의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것을. 





겨울의 일요일들

                   로버트 헤이든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은 추위 속에서도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시에 일하느랴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면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놓은 아버지한테.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




겨울이면 일찍 일어나셔 사랑방에 불을 피워주시던...

그 덕분에 늦잠까지 자놓고선 늘 냉냉하게 대해드렸죠.

이제 아버님만큼 살아보니 나도 아버지로 아버님보다 나은게 없네.



1994년 막내동생 졸업식, 2년후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