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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송진권 詩集 시읽기(19.2/8,금)

by 박카쓰 2019. 2. 9.


이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더 일찍 참여했을텐데...





첫 만남...

아하! 이종수 시인님이 리드하시며

회원님들이 한편의 시를 돌아가면서 읽고 그 소감을 이야기하네.



느티나무 슈퍼


느티나무슈퍼에 가면 안채에서 말매미만큼 늙은

할머니가 나와

달팽이자물쇠를 풀고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지요

햇빛을 받은 유리병 속의 색색 사탕들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요

빨강 파랑 봉지 속의 과자들도 부스럭대며 일어나지요

기다랗게 거미줄 늘여 타고 내려온 거미에게는 막대사탕을

유리문 시끄럽게 두들기는 사슴벌레에게 알사탕을 들려보내고

나는 담배를 하나 사지요

자기만 안 사줬다고 삐친 까치에겐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기다란 그늘이 드리올 때까지

할머니랑 이야기하지요

느티나무가 이만큼 해묵을 때까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타지로 떠난 이들과

이 동네에서 나고 한 동네로 시집가 눌러사는 이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겨'로 끝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지요.




밤나무 숲


개암이며 밤이며

잔뜩 주워다놓고 기다리는데도

엄마는 안 오네


개울 건너 북쪽으로 세 고개 넘어 큰 바위 밑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엄마는 안 오시네


엄마가 좋아하는 산딸기랑 머루를

여름내 따와서 기다렸는데

엄마는 안 오시네


으름은 넝쿨로 산을 이루고

개암은 개암나무가 되었는데도

엄마는 안 오시네


내가 안고 죽은 밤도 싹이 터서

내 몸에 뿌리를 박고 아름드리 돋았는데

엄마는 아직도 아직도 안 오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