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정월 대보름날이면 참 신났었다.
겨울이면 큰 논빼미에 물을 대어 놓아
꽁꽁 얼어붙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운동장이었다.
온동네 머슴애들이 모두 거기에 모여 썰매도 타고
공도 없어 새끼줄을 둘둘 말아 축구도 했다.
참... 이 썰매 만드느랴 고생도 꽤 했다.
밑에 댈 굵은 철사를 구하느랴 하천 뚝방시설을 몰래 허물고
기찻길 선로에 못을 올려놓아 납작하게 만들어 송곳으로 사용했다.
팽이치기도 꽤 했었다.
톱으로 소나무를 베어 자르고
밑을 깎아서 구슬(다마)을 박고
위에는 동그랗게 크레용칠을 하고
팽이채는 헝컾으로 엮어매었다.
친구들과 때로는 팽이를 부딪치게하여
누가 센가 팽이싸움도 즐겼다.
자치기...
내집 바로뒤 동산 큰묘가 놀이터였는데
그곳에서 두편으로 나누어 자치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놀이입니다.
저 쎄게 치는 것을 맨손으로 받으려했으니...
연날리기도 많이 했었다.
난 손재주가 별로 없어 방패연을 못 만들었고
오징어연을 만들다보니 늘상 뛰어 다녀야했다.
겨울에는 늘 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썰매나 연을 만들어주는 그런 착한(?)형 ㅋㅋ
동생한테는 종종 모질게 대했으면서...ㅠㅠ
중고등학교때는 땔감나무를 하러 다녔다.
돌이켜보면 그때 공부를 더 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도 하지않는 나무를 왜 그리 하러 다녔는지...
무슨 숙명처럼 겨울방학이면 으례 지게지고 나가
동네 야산을 지나 꽤 먼거리있는 산에서
나무한짐 거뜬(?)히 해오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동네분들이 그 나뭇가리가 집동가리 만하다며
공부도 잘하고 효도 잘한다고...ㅋㅋ
아마도 그 칭찬에 힘드는 줄도 모르고...ㅠㅠ.
이런 고사된 나무를 삭쟁이라 했는데
가시쟁이, 생솔가지, 솔잎, 거저배기를 했었다.
그래도 이날 가장 신났던 것은
갖가지 나물 밥상과 시루떡이었다.
떡이 설 익는다며 한 걱정하시며 찌고 또 찌며
시루에서 떡을 잘라 한웅큼씩 떼어 그릇에 담아주시면
난 대문, 방마다 광마다 헛간에도 놓았다.
어두컴컴한 곳에도 신나게 돌아다니며 놓았었다.
지금도 이 떡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고
밥보다 떡을 더 좋아하는 떡보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세라 서둘러 사랑방 아궁이에
쇠죽을 끓여 일찌감치 소에게 건네주고
아궁이에 남은 불씨로 고구마도 구워먹고
잔불을 깡통에 넣어 쥐불놀이했었다.
예전엔 저런 깡통구하기도 힘들었는데...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빠진다' 하여
밤 늦도록 추운데도 쥐불놀이를 했었다.
깡통을 마지막 힘껏 돌려 하늘로 내던질때면
그 잔불 불꽃이 어찌나 멋있던지...
이날 저녁 밥을 훔쳐먹는 문화가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추위가 느껴질때면 누구네집 방으로 들어왔는데
친구들과 '나이롱뽕'이라는 화투를 하다가 진 편이 밥을 훔쳐왔다.
그 집에 꼭 내집이어서 속상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집이 종갓집이라 먹을 것이 그래도 좀 있었고
어머니께서는 일부러 솥에 밥을 남겨놓았는지
매번 우리집이 제일로 쉽게(?) 잘 털렸다. ㅠㅠ
겨울철이면 우리집 사랑방이 온동네 사랑방이었다.
어르신들이 모여 삼태기나 퉁구먹을 짰고
그분들께 제삿밥을 내줄때는 아깝다는 생각도 났었다.
저녁 정월 보름달이 석회산에서 떠오르면
어머니는 뒷뜰 장독에 물을 떠놓시고
삼신할머니께 무척이나 오래 비시곤 했는데
나도 덩달아 빌 곤 했다.
'뭘 빌었을까?'
정말이지 정월대보름날 전날은
무척이나 바뻣지만 신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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