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내수 회원님댁에서 배터지게 먹었더니
문암생태공원까지 자전거 라이딩으로 배를 꺼춘다.
저녁먹을 생각도 없고 청주학 특강을 찾아갔다.
오늘은 '청주의 타임캡슐, 와우산과 부모산'
평소 듣고싶었던 두 산에 대한 역사탐방으로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연구사 강민식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와우산과 부모산은 청주의 도심을 가르는 무심천을 경계로
동서로 우뚝 솟아 맑은 고을 청주의 지킴이 같다.
실제 두 곳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산성이 있어
일찍부터 기록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데...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청주목...
부모산과 팔봉산이 바뀌어있다고
청주 역사와 함께한 와우산!
와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 영조 때이다.
둘레 5,22척의 토성은 지금도 자취가 완연한 와우산성이다.
이러한 성은 신라말 고려초에 해당되는 시기에 쌓은 것으로 보고 있고
정상부에서는 백제 토기편과 산자락에는 백제유적도 발견된다.
해발353m의 정상부 일대를 감싸고 서남쪽 방향의 계곡부를 따라
길레 뻗은 길이 4,857m의 성벽이 남아있다.
신라시대의 성 축조방식이 백제와는 다르다는데...
삼국 항쟁의 전장, 부모산...
부모산과 그곳의 산성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청주목 고적조에 부모성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는데 돌로 쌓았고
둘레는 2,427자이고 성안에 큰 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졌다.
2012~2013년 이곳 보루를 발굴조사한 결과
신라가 쌓은 석축 산성에 앞서 백제가 쌓은 작은 산성으로 밝혀졌다.
백제는 한성시기(BC8~AD475)부터 청주 지역에 자리 잡은 이후 작은 크기의 산성을 쌓았다.
모유정과 만들어진 전통...
부모산 정상부에 있는 모유정 '어머니의 젖과 같은 은혜로운 물'이란 뜻이다.
삼국 항쟁기와 실제 고려때 외적이 청주에 닿은 기록이 있다.
산성에서 가장 필요한 물을 가두어 두었던 곳으로
지름 7m에 3단의 계단모양으로 쌓았다.
부모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 학창시절 이곳으로 소풍왔었는데 이런 전설은 없었다. ㅠ
오늘은 많이 졸리고 성축조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지루했다.
그래도 이렇게 요약노트하며 내고장 역사를 알 수 있으니 좋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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