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로 운수좋은 날이다. 일년 24절기중 첫 절기인 입춘이라 立春大吉도 그렇거니와 산내음 산악회 일년 무사고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있는 날이고 30여년에 걸쳐 ‘산이 곧 인생이라’ 산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시는 떠돌이님의 800회 기념을 하는 날이니 어이 기쁘지 않을 소냐! 게다가 내 옆자리에는 異國人 그것도 내게는 一日 영어선생님 Irene님이 함께 앉아계셨다. 영어시간이면 늘상 영어로 수업하며 늘 영어가 생활화되어야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수능준비로 그리 못하고 이렇게라도 영어를 해두지 않으면 정말로 한마디도 못할까 걱정도 되는데 오늘 그 행운을 잡은 셈이니.
평소 한대의 차량으로 다니던 산악회에서는 모든 회원님께 운수대통의 기회를 드리고자 신청자 전원을 모셔서 두 대의 버스를 준비하게 되었고 이른 새벽 입춘 추위가 매서웠지만 설 쇠고 보름 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반갑기 그지없다. 버스에서는 시산제를 기념하여 고급양말을 비롯해 선물도 한 꾸러미네. 아무튼 주최 측 고맙습니다!
대진 고속도로로 금산 휴게소를 경유하여 서상 IC를 빠져 나온다. 영각사를 지나 고개 마루를 오르며 하늘은 구름 한점 없고 푸르다 못해 보라색을 띠고 있다. 황점에서 거센 바람과 모진 추위도 모두가 한 마음 된 시산제의 염원하는 마음까지는 얼게 하지 못하리라. 거기에 나도 한 가지 빌어본다. ‘그저 올 한해 건강하게 지내면 그만이고 나머지 모두는 덤으로 찾아오는 행운일 뿐이다.’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10시50분, 삿갓골로 덕유산을 오른다. 함께 산행하시는 아이린님은 작년 10월인가 설악산 귀때기청봉에 무박 산행을 가셨다가 아주 혼이 나셨고 그 이후에도 몇 번 산내음과 함께 산행을 하고 싶었지만 좀 난이도가 있는 산이어서 참여하지 못하셨단다. 얼마 전 산성을 오르다가 나를 만나 내가 신청을 해놓았고 그분에게는 오늘 다소 먼 거리라 생각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기로 하고 앞섰거니 뒤섰거니 하면서 말동무가 되어버렸다.
본인말대로 400세 된 나이로 산에 오르기가 힘겨운 모양이다. 다소 늦게 삿갓재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이제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무룡산을 오른다. 매서운 칼바람을 피할겸 서둘러 올라보다 조금씩 뒤처지는 아이린을 돌아볼 때면 남덕유산, 서봉 그리고 가까이 삿갓봉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서편으로 넘어가는 햇살사이로 눈꽃, 얼음 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산내음 덕유산 두더지 작전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지.
나아가는 앞쪽으로는 한달 전 내려왔던 중봉 너머 향적봉의 철탑이 보인다. 정말이지 이 곳 덕유산은 시야가 탁 트인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그 맛이 제일일 것이고 오늘 바람은 세지만 눈밭을 거닐며 가슴속은 저 앞 활기차게 내려뻗은 산줄기처럼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아이린, 겨울에는 다시는 안 온다고?” “요게 바로 겨울산행의 묘미입니다.”
멀리 내려 보이는 저렇게 많은 산악지역에서도 세계 경제 11위권이라고 우리 한국을 아이린에게 자랑해 본다. “우리는 산업자원이 부족하여 우수한 인재 양성과 고도의 기술력 등 인적자원으로 선진국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그게 아니었다. 한국의 자연은 그분 말씀대로 “Nature Wonder.”(경이로운 한국의 자연 특히 한국의 산) 외국인들에게 많은 홍보를 하라고 했다. 과연 한국을 잠깐 다녀가는 외국인들이 오르기 힘든 산에 오를까? 그렇다면 산에 위락시설을 해놓고 어서 오라한다. 이분 한국의 산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하기야 그분 고향인 미국 미주리 주에는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고지대 평지뿐라니까.
이제 신나는 능선 산행을 마치고 동엽령에서 칠연계곡을 내려오며 벌써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린, 좀 서둘러야겠어요. 일찍 가신 분들이 너무 기다리실 테니까. 그리고 오늘 칼바람을 맞으며 겨울 산행 7시간 20분, 대단한 걸 해내신 거예요. 게다가 빈약한 겨울 산행 준비로.”
어제 아이린 님께서도 시산제를 기념하여 사탕과 귤을 준비하셔 일일이 나누어 주셨지요. 아쉽게도 뒤차에 계신 분까지는 전달해 드리지 못했지만. 그리고 3월 한달 고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4월에 다시 산내음을 찾는다 합니다.
수많은 댓글들...ㅎㅎㅎ
비비아나 06.02.0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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