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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실망만 안고돌아온 백제큰길마라톤대회(03.9.28)

by 박카쓰 2008. 7. 13.

어제 퇴근을 했더니만 백제큰길마라톤대회 배번호, 칩, 마라톤모자가 와 있었다. 동아일보가 주최하여 공주에서 펼쳐지는 이번 대회는 千年支愛, 백제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는 의미와 대학 4년을 그곳에서 다녔기에 잠시나마 마음뿐 아니라 체력도 그시절로 돌아가 보자는 의미, 게다가 대학친구들과 함께 대회를 신청해 놓았기에 달리는 즐거움보다는 달리고 난후의 뒷풀이가 더 기다려진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키로당 5분대로 달려 하프코스를 1시간 45분내에 들어오는 것, 작년보다 녹슬지 않은 기량(?)을 친구들에게 선보이고 한달 앞으로 다가온 춘천마라톤에 점검주로 삼으려 한다."

불과 열흘전 18일에 올린 달리기 일지였다. 대회를 마치고 늘 대회참가기를 써왔는데 이번대회에서는 너무 실망이 크고 쪽팔려서 남에게 이런 글을 올리기가 자못 쑥쓰러워 내심 망설였는데 다른 회원님들의 글을 읽고 내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회,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올려본다.

오경택 총무님과 함께 들어서는 공주시내가 내가 다니던 조용한 고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령왕릉만 덜그라니 있었고 은색의 백사장이 펼쳐져 막걸리통과 기타를 메고 곰나루에 나가 대학 친구들과 송창식, 조용필 노래를 부르던 그런 낭만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 세월이 얼마야?


지방도시에 개최된 대회치고는 무척 많은 마스터스들이 참가했다. 풀코스, 하프코스 모두 2천명이 넘을 정도니...백제큰길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비좁은 틈으로 달려나간다. full과 불과 3분정도의 차이고 보니 더더욱 비좁을 수밖에... 내도 그 틈에 끼여 청마회에서 하프는 나만 신청하고보니 혼자 뛰는 수밖에는... 좀 외로운 느낌도 든다.

하지만 대로옆 경치는 멋있었다. 굽이굽이 금강변을 돌며 쫙 뻗은 도로엔 원색의 물결이 시원한 바람따라 부여쪽으로 흘러내려간다. 초가을의 선선한 날씨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저쪽 금강너머로 크고 작은 마을들, 천안에서 논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마라톤대회 선수를 응원차 나오신 검게 그을리신 늙으신 농부님들, 완벽한 교통통제 등 작년 이맘때 많은 청마회원님들과 함께한 임실 용담댐 마라톤회와 무척이나 흡사한 모습이었다.



11Km를 지날 무렵, 대학 동창 최*옥을 만났다. 정말이지 왠 우연이 이리 많노?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충주마라톤대회에서, 그리고 오늘 또...참으로 반가웠다. 3Km 반환때 잠깐 얼굴을 보았던 우리청마회 홍정의님을 격려(?)하고자 좀 욕심을 내어 달려 나간다. 반환점 못미쳐 간신히 따라붙어 서로 화이팅을 외치고 헤어진다.



여기까지는 참으로 좋았다. 10Km를 48분, 15Km를 72분정도에 달려왔으니... 하지만 차츰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이온음료를 좀 많이 마셨다. 16Km 지점, 언덕을 오를때쯤 힘이 힘이 부치기 시작하며 '아니야, 양궁장을 올라내리던 내가 언덕에 강한데...' 하면서 자꾸 아니라고 외쳐보지만 스피드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만치 앞서가던 주자가 쓰러지고 함께 뛰어가던 주자들이 드러누운 선수에게 물을 뿌리고 입을 벌리고 주무르며 애타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난 맥이 쫙 풀렸다. "저러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쩔거나...쯧쯧"



다시 뛰어나가려 할때쯤 겁도 덜컹 났다. "아이쿠, 나도 저꼴 나는 것 아니야?" 얼마 안있어 경찰차, 앰프런스가 급히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고 모두들 내앞을 추월해 나가는데 난 제자리 걸음을 하는 건지 겨우겨우 달려나가고 있었다. 차라리 걸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풀도 아니고 하프뛰다가 걷는 놈은 청마회에서 나밖에 없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팔리게 청마회 유니폼을 입고서리...'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인가 보다. "오늘 날씨가 덥다. 함께 달리는 회원이 없다. 같이 뛰기로한 친구가 안 온것같다" 등 여러 핑게거리가 있지만 여름내내 즐달이한다는 구실로 대회走정도의 스피드走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니까...마지막 6Km는 6분대로 달려 겨우 겨우 1시간 50분이내에 들어오고말았다. 이제까지 대회출전사상 최악으로...



그렇게 힘들게 들어왔는데 반기는 이, 하나가 없었다. 함께 달리자고 나더러 대회신청하라고 해놓고 오늘 만나기로 했던 두 친구도 급한 일이 생겼는지 볼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운동장 귀퉁이 나홀로 주저앉아 꾸역꾸역 넘기는 그 빵은 눈물젖은 빵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론 눈물이 젖어있는 빵이었다.



'제사보다 제밥에 눈이 어둡다'는 한 분의 댓글대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인가 보다. 풀코스를 달려들어오는 우리청마 회원님을 기다려볼까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 나오기도 했고 나홀로 서있는 내모습이 너무나 초라해보여 바로 청주로 발길을 돌렸다. '세상 어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많이도 되뇌이며...'

 

 

12.7Km까지는 1시간 02분에, 하지만 마지막엔 무려 1시간 49분55초! 50분대를 안 넘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네. 최악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