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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마라톤글

마라톤 처녀출전기(01.10.28)-충주사과하프 1시간 43분02초

by 박카쓰 2007. 10. 6.



밤새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비치고는 꽤 많은 양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면 스포츠경기는 순연 되게 마련이지만 마라톤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은 杞憂인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처녀출전이어서 인지 자꾸 걱정이 되고 수학여행을 앞두고 들떠서 잠을 설치는 학생모양 이 밤이 왜 이렇게 긴 것입니까?
 

  소매가 없는 파란 셔츠, 속 알(?)이 보일 것 같은 짧은 파란 팬츠의 청마회 유니폼을 입고 파란 모자에 신발까지 파란 색으로 통일하여 출발지점에서 겁먹은 얼굴에 파닥거리는 새가슴을 한 채 총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등에는 '청마회 박해순'이라는 여섯 글자가, 가슴에는 '청주마라톤' 다섯 글자가 내가 누구인지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부여받은 4-6358 배번(4-는 40대를 의미함)을 달고있기에 비록 마라톤 새내기지만 오늘 고무도 당당히 뛰어볼 참입니다. 
 



  지난 4월말 학교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것을 시작으로 여름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이 도로, 저 도로로 많이도 뛰어 다닌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얼굴에 살이 빠지고 때꾼해졌다고 장모님한테 걱정까지 끼쳐드리며 무리하게 달려보았답니다. 그래도 올해가 가지전에 촌 동네 실력이지만 공식대회에 출전하여 내 스스로를 점검 받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10시 30분! 땅! 하는 총소리를 듣고 모두들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처음 5Km는 서두르지 말고 아주 천천히... 짓궂은 친구의 말을 빌면 마누라 처음 다룰(?) 때처럼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남들은 꽤나 빨리 달려나갑니다. 이러다가 꼴찌 갈까 나도 다소 급하게 발길을 재촉해 봅니다. 7Km 지나면서 내 나름대로 연습할 때처럼 숨을 가다듬으며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이제 궂졌던 날씨도 활짝 개이면서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주변이 온통 가을로 물들어져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 길옆의 은행나무 노오란 잎이 단풍놀이 못간 恨을 달래주고 왼쪽에는 남한강의 물결이 가을 햇살에 찰랑 찰랑 반짝이고, 오른 쪽에는 무슨 산인지는 모르지만 꽤 높은 산에서 비 온 후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좋은 날! 땀을 흘리며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樂이 어디 있나? 새삼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것이 참으로 잘 한 짓이고 이렇게 달릴 수 있도록 튼튼한 다리를 주신 부모님!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아직도 갈 길은 먼데 경찰 오토바이와 안내차량이 보이고 선두가 벌써 반환점을 돌아 이 길로 달려오고 있네. 아이쿠, 이래선 안되겠다. 좀 더 스피드를 내자. 함께 온 내 마라톤선생님 정구영 박사와 同門修學한 최광옥 선생을 마주 치게되어 서로에게 Fighting을 외치며 격려해 본다. 이윽고 반환점(11.8Km)! 시간을 보니 57분을 지나고 있었고 1시간5분 정도로 생각했는데 빨리도 달려왔군.
 

 돌아오는 길은 꽤나 멀어 보인다. 이제 햇볕은 쨍쨍 내려 쪼여 덥기까지 하고 내 폼이 멋있어 인지 내 유니폼이 멋있어 인지 아까부터 따라붙던 한 친구도 이제 날 추월해 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달리고 있네. '그래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누가 하라고 시켰나? 自業自得이지 뭐.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음에 풀 도전하려고 했더니 난 하프수준밖에는 안 되나봐' 오만가지 萬感이 교차한다.


 하지만 길가에는 자원봉사자로 나온 아가씨들이 준비한 물, 물 적신 스펀지, 응원해주는 파이팅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한 후 만이 값진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5Km 남았다는 간판! 야! 이제 다 왔구나. 앞으로 20여분만 더 가면... 하지만 눈앞에는 언덕길이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듯 높게 보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 한 컵 더 먹고 젖 먹던 힘까지! 아까 말한 그 친구가 또 일러 주었지. "×나게 뛰라고." 그래 동부우회도로 오르막 도로를 얼마나 넘어 다녔는데 여기서 걸을 순 없지. 고갯길 하나를 더 넘고 난 후 시내로 접어드는 내리막길에서는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힘차게 마지막 스피드를 내야지' 하고 마음은 먹어보지만 몸은 한 사람도 추월하지 못하고 골인지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프 21.0975Km 얼핏 1시간 42분! 야! 그래도 잘 달렸다. 오기 전 1시간 50분 정도로 예상했었는데...

  

  먼저 달려온 정박사가 "선배님, 처음 출전하셔 참으로 잘 달리신 겁니다." 하면서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선물 보따리를 내놓는다. 목에 자랑스런 완주 금(?)목걸이를 걸고 충주사과를 꽉 물어뜯는 이 기쁨! 그 무엇에 비하랴! 그리고는 다짐해 봅니다. '이번 겨울 열심히 연습하여 내년 봄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마라톤 풀 코스에 도전, 전국에서 모인 健脚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강변을 달려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