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겨울산행의 백미'자연성릉'(02.1.27)
오늘만큼은 내가 제일로 담이 크고 부지런한 사람! 유성에서 친구들과 밤을 보내고 새벽 조깅을 나갔더니 서쪽 녘에 둥근 달을 볼 수 있었네. '잘하면 계룡산에 올라 雪景 속에서 日出을 眺望할 수 있으리라' 라는 생각이 문뜩 들어 등산채비를 갖추고 동학사로 차를 몰았다. 國立 顯忠院 언덕을 넘을 무렵 땅이 얼어붙어 '아! 잘못 왔구나' 라고 후회도 되었지만 雪原속에서 해를 본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5시 40분 매표소를 지나 발걸음을 재촉하여 동학사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주위엔 칠흑같이 깜깜하여 손에 든 라이트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온 누리가 쥐 죽은 듯 고요히 잠들어 있어 오직 내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얼마쯤 쉴 때도 되었지만 무서워 그냥 서있을 수 없었고 오직 빨리 올라가는 길만이 두려움을 달래는 길이었다. 군데군데 단풍나무 가지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려앉아 바쁜 길을 가로막고 이제 점점 눈은 많아져 발목까지 차 오른다. 진작 아이젠을 하고 올랐어야 했는데... 지금으로선 자리잡을 데도 없고 혹시라도 이러다 猛獸로부터... 불길한 생각이 나니 차라리 아무 소리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前 같으면 계룡산의 돌계단이 그렇게 싫더니 오늘은 그 계단이 없었으면 길이 어디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고 미끄러워 오르기도 힘들 뻔했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릴 무렵 저 위쪽 높은 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며 남매탑이 가까워 왔음을 알 수 있다. 갑자기 큰 새 한 마리가 후닥닥거리는 소리에 소름이 끼쳐 올랐고 어서 산사 가까이로 가고 싶었다. 남매탑에 이르렀지만(2.2Km:06:45) 인기척은 없고 남매탑만 다정한 오누이처럼 서있었다. 우리 4남매도 얼마 전 어머니한테 상속을 내려 받았는데 똑 같이 나눌 수 없어 걱정을 했지만 동생들이 다 이해하고 별 말없이 따라주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두들 건강히 잘 살게 해달라고 두손 모으고 빌어본다. 이어 주변은 날이 새 오며 스패치와 아이젠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감귤 몇 개를 깨물어 먹은 다음 이젠 무릎까지 차 오른 가파른 길을 올라 금잔디고개에서 이곳 동학사로 넘어오는 고갯길에 이른다. 막걸리 파는 아줌마가 있는 자리엔 바람이 불어 눈덩이가 어른 키만 하게 우뚝 가로막고 있으며 좌측으로 삼불봉 계단으로 정상을 향해 한 발 한발 오른다. 가지나 겁나는 데 웬 까마귀 떼가 깍깍 울고 나른담? 저놈들이 날 먹이로 생각하나? 아니겠지. 날 보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거겠지. 이윽고 삼불봉 정상(775m)에 올라(07:30)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雪景! 맑은 햇살을 보지 못해 다소 서운한 감은 있지만 계룡8경 중 제2경인 삼불봉의 雪花는 겨울 계룡산 최고의 風光으로 꼽힌다더니 참으로 대단하더이다. 남서 방향으로 구불구불 龍의 形狀을 한 능선을 타고 관음봉과 문필봉, 연천봉, 그리고 쌀개봉과 천황봉의 威容이 한눈에 들어온다.
넋 나간 듯 주위를 살펴보다 여기서 그만 하산할 까 하는 잠시 망설임도 있었지만 '계룡산 겨울산행의 白眉는 자연성릉' 이란 말도 있듯 여기서 멈출 소냐?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무릎까지 푹푹 빠져가며 처음으로 밟는 기쁨! "오늘만큼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담이 크고 부지런한 사람이노라." 이번 겨울 들어 소백산, 오대산을 다녀왔지만 추위로 능선을 타며 겨울 산행을 해 본 적이 없기에 이런 코스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삼불봉에서 관음봉에 이르는 자연성릉 구간(1.8Km)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계단과 협소한 길이고 군데군데 눈이 쌓인 곳은 허벅지까지 차 오르고 내리막에서 넘어지고 둥글고 아직도 산에 올라온 지 3시간 가까이 되어가건만 만나는 사람 한사람 없다. 이런 변화무쌍한 코스를 내 혼자 구경하기엔 너무나 안타깝다. 누구와 같이 왔으면 훨씬 더 좋을 텐데... 그 때 저 멀리 관음봉에서 이리고 내려오는 사람이 눈에 띄고 이내 遭遇하여 "정말로 사람 만나기 힘드네요.""역시 산행은 겨울산행이지요." 그분이나 나나 혼자다. 대학 때 영수필시간에 여행은 혼자라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 들어 나도 혼자서 하는 山行과 마라톤이 좋으니... 그것 참...
전망이 제일 좋다는 관음봉에 올라(816m,08:10) 계룡산이 어떻게 하여 山峰의 형태가 닭머리 形狀이고 밑부분이 용 비닐처럼 보이는 지 유심히 살펴볼 쯤 안무가 암봉을 하나씩 덮기 시작하며 이젠 배도 고프고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오는 길에 은선폭포는 길이는 30m 된다고 하나 갈수기인지라 물줄기가 미약하였고 은선대피소를 지날 무렵 쌀개봉을 眺望하고 이내 동학사까지 줄달음쳐 내려온다(2.4Km,09:40).
불과 4시간만에 神仙이 살고 있는 곳을 다녀온 느낌이다. 오늘은 전보다 보고 느낀 바가 너무 많기에 글도 이렇게 길어졌다 보다. 벌써 다음 겨울 산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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