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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전남광주

종주산행의 典刑, 지리산 주능선 종주(01.8.1-8.2)

by 박카쓰 2008. 7. 12.

올여름 다시금 지리산 주능선 종주가 하고싶어졌다. 0박0일 화대종주를 꿈꾸었지만 꿈만 꾸게될 뿐...ㅠㅠ 에라! 편하게 산악회따라 2~3구간 나누어 가보자!!

벌써 18년전이라...지리산 참 많이 다녔어도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다.

10명이 출발, 5명만이 완주했다.

 

 

 

 

산행기를 이리 남겨놓았으니 그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되돌릴 수 있제...

 

 8월1일 밤10시 우리일행 10명은 지리산 종주를 1박2일로 계획하고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전에도 지리산을 몇번 가보았다. 대학시절에는 친구 들과 뱀사골 단풍구경을 하면서 반야봉을 거쳐, 노고단으로 내려왔고 얼마 전에는 직장동료들과 토요일 내려와 거림에서 하룻밤을 자고 세석평전까지 올랐는데 주변의 봉우리를 바라만 보고 일행에 쫓겨 그냥 내려왔는데 너무나 아쉬움이 많았다.

 평소 암벽을 타는 것보다는 도보산행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번 지리산 주능선 종주가 행운이고 반드시 답파하기로 마음먹은 터였기에 기대가 몹시 컸다. 혹시라도 소나기성 폭우가 내려 몇년 전처럼 큰 사고나 나지 않을까 무척 걱정도 했고 지리산을 종주하는데 체력이 다소 달(딸x)릴까봐 우암산 산행과 마라톤으로 무장(?)해 왔었다.

 

버스로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동안 멀리 보이는 달빛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이번 산행에 '날씨까지 도와주는 구나' 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노고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세차게 내려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제 우리팀은 안개 속 터널같은 등산로를 접어들어 임계령쯤에서 김밥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지리산 제2봉 반야봉은 그냥 지나치고 삼도봉에서 잠시 쉬노라니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에어콘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몹시 찼다. 얼마 되지 않아 날씨 탓인지 일행 중 몇몇은 뒤로 쳐지기 시작하고 나를 포함해서 4명은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12시경 연하천대피소에 이르러 점심으로 즉석찰밥과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처진 일행이 당도하지 않아 다소 초조했는데 다행히 이곳까지 따라붙어 점심을 차려주었고 종* 형과 나는 선발대가 되어서 먼저 출발하였다. 빨치산과 격전을 치뤘다는 벽소령에서 잠깐 쉬려는데 무척이나 비가 많이 내려 혹시라도 우리 일행이 여기서 포기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선발대의 임무를 다해야 했기에 다시 발길을 재촉하였다.

 

이곳에서부터 덕평봉, 칠선봉을 거쳐 영신봉에 이르는 코스는 무척이나 지루하고 인적도 드물었으며 천둥과 번개, 폭우로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모양을 해 가지고 종* 형과 나는 앞섰거니 뒷섰거니 하염없이 발만 앞으로 내딛어 세석대피소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가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세석평전! 두달전 이곳에 왔을 때 갖가지 식물에 양쪽의 두 봉우리가 그렇게 멋지게 보였는데 지금의 내 꼴은 신발에서 물은 찌걱찌걱, 옷은 속까지 다 젖었고 배는 왜 그리 고픈지... 이 고생하려고 여기 다시 왔나? 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새삼 살아가는 것이 별 것 아니고 모두가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피소에서 우리가 누을 자리를 찾아 정돈하는데 동문수학한 최광* 선생 가족을 거기서 만날 줄이야. 세상 참 좁다! 늦게 오는 동료를 위해 식사 준비하고 있는 동안 우리 일행이 도착하였으나 5명은 벽소령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고 세 분만 따라오셨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군. 어렵게 결단을 내려 이곳까지 오게된 무용담을 들으면서 라면이 주메뉴인 저녁을 먹고 비좁은 마루바닥에 칼 잠이지만 이내 곯아 떨어졌다.

 

 이튿날 여전히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오늘만큼은 이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참 재수도 없지... 우리 이제  5명은 정상에 오르려면 배는 가득 채워야 했기에 반찬은 없지만 어제 남은 밥을 닥닥 긁어먹으면서 불쌍하게 초코파이와 영양갱으로 중무장하고 정상공격에 나섰다.

 다행히도 빗줄기는 머금고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에 도달할 즈음에는 구름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하였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길에는 산불로 죽은 고목이 안개 속에 정승처럼 서있었고 이국적인 냄새가 풍기는 갖가지 식물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通天門)을 지나 천왕봉에 이르니 이곳저곳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험한 날씨에도 무척 많았으며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뽐내느랴 정상을 알리는 돌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고 핸드폰으로 전화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하산 길은 무척 가파렀으나 더운 날씨에도 올라오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얄밉게도 이제야 구름이 걷히고 저 멀리 지리산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아래 중산리 동네도 보이고 하루만 늦게 왔어도 지리산 굵직한 능선과 계곡을 볼 수 있는 건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법계사, 로타리 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왔다. 매표소를 지날 무렵 천왕봉을 바라보니 하늘이 뻥 뚫린 채 그 기세가 하늘에 닿을 듯 하다.

 

  그 아래 가게에서 산나물에 동동주 그 맛보다 34.2Km를 종주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버스에 오를 때는 우리 일행은 벌써 취해 있었다. 평생을 두고 거듭해 올라도 좋다는 어머니같은 지리산한테 고마움도 모른 채,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