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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역사저널

고구려인 고선지! 서역을 정벌하다!!

by 박카쓰 2024. 2. 11.

고구려인 고선지! 그는 누구인가?

 

중국 당의 무장. 본래 고구려의 유민이었다. 

 

 

 

 

668년 고구려는 멸망했다. 

 

당나라는 저항을 막기위해 고구려인들을 사막으로 내몰았다. 이역의 땅에서 고선지가 태어났다.  

 

 

 

741년 파미르 달해부를 격파하며 서역을 누렸다. 

 

747년 파미르고원에 올라 당을 위협하는 토번(현재 티베트)을 격파했다.  

 

파미르고원과 빙하를 넘는 대원정으로 72개국을  함락시킨 명장이 되었다. 

 

751년 탈라스평원, 동서양 최초의 전쟁 

 

고선지의 원정군은 탈라스강(현재 키르기스스탄)까지 진군하는 과정에서 72개가 넘는 국가를 정복하면서 피로가 극에 달해있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동맹군으로 같이 참전한 텐산 북쪽에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 카를룩족이 아바스 왕조측으로 돌아서는 등 연이은 악재로 패전했다. 

 

당나라는 탈라스 전투 직후 안록산의 난이라는 거대한 내전이 발발하면서 더 이상의 중앙 아시아 원정을 중단해야 됐다. 그 직후 당나라 주둔군이 철수한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슬람 종교가 서서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제지법(製紙法)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이 탈라스 싸움 때 대식군에 포로가 된 당병 중의 제지공(製紙工)이 사마르칸트에서 제지를 시작한 데 유래한다. 

 

이후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으로 넘어갔다. 

 

755년(천보(天寶) 14)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부원수로서 협주(陜州)에 주둔했으나 뤄양이 함락되어 장안 방비의 필요상 동관(潼關)에 이동했다. 이 때에 감군(監軍)의 환관 변영성(邊令誠)과 불화, '싸우지 않고 협주 수백 리를 버렸다'는 변의 참소를 입고 군중(軍中)에서 처형되었다.

 

고선지에 대한 평가... 고선지의 업적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