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들 목
시인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시인 박남규 대구 출생(1953생)
제주제일고부설 방송통신고 졸업,서울 사이버대 사회복지과 중퇴, 현 대구남덕교회 협동장로
대한문학세계 계간지 신인문학상, 등단(2016) 대구문인협회 회원
첫시집 '아프지 않아도 사랑하게 해주세요'(2018년) 시집 2권 '몽돌' (2019년) 3집 구들목 (2021,10월)
이 詩를 읽으니 옛 어린 시절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특히 겨울 생각이 더 납니다. 왜 그리 추웠는지 정말이지 아침에 일어나기 참 싫었지요.
내 집도 겨울엔 여섯이 한 방에서 지냈다. 크지않은 방에도 한켠에는 재봉틀이 있었고 윗목엔 고구마를 쌓아두고 겨울내내 먹었고 얼음장같은 윗방엔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가 있었다. 겨울에는 밖으로 나가기 귀찮았는지 윗목에 요강도 갖다놓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르신들은 새벽잠이 없으신가보다. 부모님께서는 일찌감치 등잔불을 켜시고 차가운 윗목에서 손이 바쁘셨다. 어머니는 미싱(재봉틀)을 돌리시며 바느질을 하셨고 아버지는 짚으로 새끼를 꼬셨다. 때론 두 분이 손을 모아 벼를 담는 가마니나 누에가 잠을 자는 섶을 짜셨다.
그럴때면 4남매도 하나둘 눈을 뜨고 아직 온기가 좀 남아있는 아랫목으로 파고들었다. 요는 두어개 있었지만 커다란 이불 하나를 덮고 각각 제 자리에서 잠들었지만 새벽녘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구들목을 찾아 여러 개의 발가락이 한 곳에 모아졌다. 서로 발이 닿는다며 차고 밀어내며 징징 거렸다. "애들아. 그만 싸우고 일어 나거라."
문밖에서는 찬 바람 부는 소리가 윙윙나고 어쩌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면 문풍지가 부르르 떨리고 뚤어진 문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어이 추워." 다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부엌으로 나가신 부모님께서는 밥을 하시고 쇠죽을 끓이시며 자식들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나와 세수해라."
부모님 다그치시는 소리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었고 겨우 눈꼽만 떼어내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얼릉 방으로 들어와 또 이불속으로 발을 디민다. 어느새 구들목이 아까보다 훨씬 따뜻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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