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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시] 겨울나무 - 유송당 산수화

by 박카쓰 2021. 12. 20.

 

 

겨울나무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시집 《부드러운 직선 》창비시선 177. 1998

 

 

겨울 나무 /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 되어 어지럽다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이정하 ‘겨울나무’그대가 어느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