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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류인순 시 모음

by 박카쓰 2021. 12. 6.

첫눈 산행 

 

힘든 산을 왜 오르느냐 물으시면
그냥 조용히 웃을래요
올라본 자만이 그 맛을 아는데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하리까

첫눈이 왜 좋으냐고 물으시면
그냥 조용히 웃을래요
첫눈의 설렘과 그리움을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하리까

단지
첫눈 오는 날 산에 올라
천국을 맛본다고 하면
그댄 조금 아시려나.

 

 

 

주말의 행복

詩 / 가향 류인순


모처럼 여유와
한 잔의 헤즐넛향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 좋은 날

한 주의 지친 육신
싱그러운 햇살에
내걸어 뽀송뽀송 말리고
고단한 마음 한 자락
실바람에 툭툭 털어내면
창가에 길게 늘어진 햇살 사이로
보이는 먼지 한점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시간


실내 가득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에 실어
모차르트 나직이 깔아놓고
사랑스러운 그대를 불러 앉히면
이 순간이 바로 낙원이다.

 

 

 

살다 보면

류인순

꽃피는 봄날만 있겠는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어디 한두 번이랴
이런저런 별일 다 있다네
가랑비가 장대비 되고
드센 찬 바람 불어 때론
우박으로 떨어져 아플 때도 있지만
겨울 지나 어김없이 봄은 온다네

담장 너머 이웃은 웃음꽃 만발인데
저 홀로 막다른 고샅길에 서 있다고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 바람 소리 서럽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저마다 가슴 열어보면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네

한 세상 사는 일이
내 뜻대로만 되겠는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엔
쉼표 하나 찍어 놓고
아무렴, 잠시 쉬어 가는 거야.

 

 

겨울나무
              류인순

지난 가을
벗어 던진 옷가지에
시린 발목을 덮고
나무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네

겨울 한복판
날을 세운 칼바람에
온몸 맡긴 채
골짜기 사이로
묵은 추억 밀어내고

하분하분 춤사위
눈꽃 핀 가지마다
연둣빛 설렘
움 틔우기 위해
옹골차게 숨 고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