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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문학동네

권명숙 시집을 받아들고...

by 박카쓰 2021. 10. 8.

2019년 동네책방 '꿈꾸는 책방'에서 이종수시인과 함께 시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알게된 권시인님...그때 동인지 '여름강' 제7집을 선물로 주셨지요. 얼마전 박카스도 산문집을 내며 그때의 고마움에 답하려 전했더니 어제 그 책방에 가보니 3배로 튀겨진 선물을 받네요. 

 

 

권명숙시집 '읽히고있다'는 2012년11월에 펴냈으니 벌써 10년째, 완전 베테랑시인이셨구나. 시동인지 여름강도 해마다 출간하니 제9집이 되었고 지난 8월 또하나의 역작을 발표하셨네요. 

 

 

 

그런데 일반 시집과는 남다른 것이 많네요.ㅎㅎ

 

책이 세로가 길고 디자인도 깔끔...

그런데 책 제목이 왜이래?

꽃사과나무 아래 괭이밥 노란 꽃은 왜 아파 보일까? 

글쎄....


[작가소개] 

말하는 것보다 쉬워서,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가능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한참 생각해도 되고 지우고 고칠 수도 있어서 좋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깨우고 생각을 부르고 생각을 모읍니다. 고맙게도 생각이 가는대로 동시가 되고 시가 되어줍니다. 말은 참을 수 있지만, 글쓰기는 참기 어려울 듯 합니다. 여전히 말하는 것보다 더 편해서...

 

 

[자서] 책을 펴내며

괭이밥이 파란 꽃, 자주꽃, 보라꽃을 피울때 까지 기다려주기로 한다. 2020년 여름 

 

[목차] 차례도 1,2,3, 4부가 아니라 꽃사과나무, 괭이밥, 노란꽃, 보이는걸까 ...

 

 

 

그럼 권시인님의 시를 읽어볼까?

우선 책 제목에 실린 시부터 찾았다. 

 

괭이밥

 

꽃사과나무 아래 괭이밥 노란 꽃은 왜 아파 보일까? 

 

벗어든 셔츠가 종아리를 스칠 때

높은 데서 불던 바람이 발목을 슬쩍 만지고 지나가는데 

가슴 어디쯤에서 실뿌리가 파르르 떨렸는데 

내 몸 어딘가에 퍽 깊은 웅덩이라도 있었나?

작은 떨림에도 허기의 종지에는 찰랑거릴 만큼의 먹잇감이 고이는데 

초가을 하늘은 갖가지 구름을 시시때때로 내다 말리는데 

새털구름 하나를 슬쩍하고 돌아서는데 

슬쩍하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닌데 

갓마른 옷가지들이 왼팔에 보송보송하게 걸쳐지는데 

때늦은 꽃이 고것뿐인 것도 아닌데

 

 

 

 

여름강에 실렸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대성로 268번 길

                          

수암골 아래 긴 골목

서경빌라 스위트빌

샤르망풍옵셪호텔식원룸

흐릿한 기억이 팝업으로 뜬다

 

몇 번 망설이다가 대문을 두드렸다

자취방 있어요?

더 싼 방 있어요?

돌고돌던 골목

 

미끈한 빌딩들이 우뚝 섰다

우암빌 유진빌 영진하우스와 코인빨래방

어디로 드시겠습니까?

에어컨, 드럼세탁기, 붙박이장, 냉장고, wifi 빵

빵 풀옵셥입니다

 

번개탄이 연탄보다 더 많이 필요했던

주인집 연탄밑불 옮겨 넣고 웅크리고 자던

계단아래 번태탄이 가득하길 바랬던 골목

수백 년 만에 발견된 벽화처럼 꼼꼼히 읽는다

 

더큰컵밥 백미순대 쭈꾸미얼큰칼국수 GS25

골목 끝 북경반점은 아직도 기우뚱 서있다

 

 

 

 

 

미세먼지 좋음

 

이종수 시집 '안녕, 나의 별'에서 '부시다'를 데리고 산책한다. 둥근 달이 아파트 뒤편으로 갔다가 반대쪽에서 나온다. 어둠에 얼굴을 부시고 나온다. 쏟아지는 잠을 부시러 나온 나는 '부시다'를 목련나무 겨울눈 옆에 걸어 두고 산책한다. 달랑달랑거려도 덜렁덜렁 걸려도 '부시다'는 부시다이다. 나는 나의 잠을 부시면 된다. 까치똥은 길바닥에 쌓이고 잣나무 가지에서 잠든 까치는 숨소리를 감춘다. 앞서 걷는 담대연기가 골목을 통째로 부신다. 뒤로 돌아 걷든다 때마침 향수 짙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나의 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달은 제멋대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간다. 걸려있는 '부시다'를 걷어 손에 쥔다. 까치의 숨소리도 담배연기도 짗은 향수도 제 갈 길을 간다. 고요해진 공원을 고요하게 들고 돌아간다. 안녕 나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