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친구이자 구인회 멤버 홍종승이 첫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첫 시집을 출간하며>
푸른 뽕잎을 먹으며 자란 누에는
입에서 명주실을 내 뿜으며 집을 짓듯이
나도 그간 먹고 소화한 내 마음의 언어들을 모아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원으로 엮어
작은 집을 짓는다
다른 길에서 바라본 세상이
시원한 바람과 풀꽃 되어 사랑으로 피어나니
가슴에 향기 고운 꽃을
한아름 안고
마음을 나누는 영혼들
작은 미소 딴 당신이 예쁘다
[홍종승시인의 약력]
세종시 연서면 성제리에서 출생
2017년에 《문예사조》의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와 문예사조문인협회 등에서 활동
대전문학동인회 회장으로 ‘대전문학동인’ 발간
인덕헌의 봄
인덕헌은
나를 담아두는 작은 항아리
그속에는
1,227권의 책과 추 떨어진 괘종시계와 TV 그리고 작은 식
탁에 손님이나 와야 제 구실하는 네 개의 의자가 있다
오늘은
춘자와 밀어를 나누는데
밖의 명자나무가 춘자의 젖몽우리 같은 실눈을 뜬다
동冬이 녀석은
인덕헌 주변을 눈치 없이 어슬렁거리다
춘자가 카슈미르 이불을 덮고 나의 무릎을 베고 눕자 느닷없
이 쳐다본다.
TV는 연일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뉴스를 타전하는
이 저녁
동이 녀석이 매가리 없는 자슥이 되어가고
어리벙한 춘자는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가 되어
동이도 춘자도 담지 못하고 깨져버리는 항아리 속의
봄,
떨어진 시계추만 봄의 불알을 잡고 누워버린다
공즉시색 空卽是色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뻐꾸기시계엔 뻐꾸기가 없고
내 안엔 오늘을 사는 내가 없으니
날이면 날마다 오는 세상에서
만만한 걸 빼면 무엇이 남을까
사는 일엔 정답이 없고
사는 날까지 지켜질 비밀이 없고
죽는 일엔 오답이 없고
죽는 날까지 지켜질 비밀이 없고
죽고 사는 일에 공짜가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죽을 때까지 함께 하자던 우리의 약속은 야속할 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어 퍼지는 통로일 뿐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고
시장 골목에서
골라, 골라, 공짜, 공짜 외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진짜 공짜이듯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없고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으니
세상에나,
알 듯 모를 듯...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
내자지덕 內子之德
그는
아내의 말을 들으니
하는 일마다 대박난다고 했다
거꾸로 읽으라면 거꾸로 읽고
바르게 읽으라면 바르게 읽으니
운運은 저절로 따라 다닌다고 했다
나랏일을 거꾸로 읽으라고 해서
변두리 아파트를 헐값에 사두니 재개발이 들어가고
찍어준 주식을 사니 상한가를 친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어째서 하는 일마다 대박이냐 물으니
내자지덕 內子之德이라 한다
내 자지 덕이라고?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목욕탕에서
고추 함부로 놀리면 큰일 난다는 말을 따갑게 들었는데
요즘
그의 건배사는
내자지덕內子之德만 외친다
허용공차론許容公差論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허용되는 공차가 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날때
나사와 볼트처럼 허용공차가 생겨난다
마음이 넉넉지 않아도 받아주면 장작불같은 관계가 되고
마음이 넉넉해도 들어갈 마음이 작으면
성냥불 같은 관계가 된다
허용공차를 넘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처럼 오차 밖으로
벌어져 다시 죌 수도 없다
겨울 햇살이 처마 밑 틈새를 파고들기도 하고
아무리 어두워도 틈새 속의 빛은 더 빛내기 마련이다
새들은 허용공차 안에서 둥지를 틀지만
사람은 종종 마음의 둥지에 오차를 벗어난
틈새가 생겨 불행에 이른다
하루하루
허용공차속에서
틈새를 좁혀가는 것이 삶의 틈새를 좁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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