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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대청호반대전

계룡산 처음 올랐던 곳은 어디쯤일까?

by 박카쓰 2021. 6. 20.

엊그제 고향친구 카톡방에서 오늘 하늘이 이처럼 맑은 날이면...

 

 

내집 거실에서 계룡산 천황봉이 보인다며 이야기하다가... 

맨뒤 봉우리가 계룡산 최고봉 천황봉이다.

 

 

친구들이 1976년(?) 캠핑갔을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덕유산~대둔산~계룡산으로 왔다구?

 

 

어쩌다 신도안에서 하룻밤 묵은 일... 익일 사진속 경로를 거쳐 동학사로 간 일...

1970년대 사진, 그때의 경로...

 

 

처음 계룡산을 찾았을때의 기억은 45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생생하다. 대전버스터미널에서 동학사가는 버스를 타야하는 것을 계룡산만 보고 신도안가는 버스를 타게되었다. 저녁때가 되어 다시 도로 나갈 수도 없고 신도안에서 하룻밤 텐트속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천황봉에 주둔했던 군인들과 가재를 잡으며 라면을 끓여먹었단다. 난 가재잡은 일은 기억이 나지않지만 무수하게 많은 암자와 펄럭이는 깃발, 해괴한 모양의 부처님상 등등 무서웠다.

 

다음날 계룡산 등산에 나섰다. 분명 등산로도 없었다. 아마도 위 사진 어디쯤으로 올랐다. 오르다보니 무척이나 험했고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올라가는데 군사시설로 "접근시 발포함" 이라는 빨간 팻말이 붙어있었다. 섬뜩했다. 하는 수 없이 올라가지 못하고 우회해서 쌀개봉으로 갔는지 아니면 동학사 방향으로 내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종착지는 동학사였다. 그곳은 지금도 비탐방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모험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무모했었다. 

 

저 산을 넘어 동학사에 닿았다.

 

지금도 출입금지구역인가보다. 

 

 

 

신도안...말 그래로 새로운 도읍이라는 뜻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과 함께 내려와 도읍을 정하려다 한양 무학산으로 정했다죠.  19세기 초 동학교도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많은 종교인들이 들어와 오죽했으면 '1종교1교주1신도'라 했을까? 그당시 100여개의 종교단체가 난립하였다. 그러다 박정희때 무신타파운동,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며 정비가 되다가 1984년 6월 삼군부가 계룡대로 내려가면서 모두 쫓아냈다지. 현재는 계룡대가 이처럼 위치해있다.

 

계룡산 신도안 동학교 마을터

 

계룡시에 왔을때 잠시 괴목정공원에 들린 적이 있다. 

 

지금도 산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이 곳을 다니나보다.

 

언제 이 길을 걷고싶네.

 

계룡산 제석사

 

용동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