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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인문학

儉而不褸 華而不侈(검이불누 화이불사)

by 박카쓰 2021. 5. 10.

흔히 우리건축은 스케일이 작다고 하며, 서양의 웅장한 석조건물과 중국의 궁궐과 심지어 일본의 성곽의 거대함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우리 고건축에는 서양이나 중국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미학이 있다. 절대로 문화적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는 스케일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의 적합성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건축의 중요한 요소를 순서대로 꼽자면​ 첫째는 자리앉음새(Location) 둘째는 기능에 맞는 규모(Scale) 셋째는 모양새(Design)이다. 그런데 건축을 보면서 규모와 모양새만 생각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자리앉음새을 소홀히 하는 것은 건물(Building)만 보고 건축(Architecture)은 보지 않은 셈이다. 건축의  자리앉음새란 座向이라고 해서 건물을 어떻게 앉히느냐를 말하는데 전통적으로 풍수의 자연원리에 입각하였다.

충렬왕 3년고려사에는 "삼가 도선 스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산이 드물면 높은 누각을 짓고 산이 많으면 낮은 집을 지으라' 하였는데 산이 많은 것은 陽이 되고 산이 적은 것은 陰이 되니,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낮은 집(陰)이 조화로우며 만약 높은 집을 지으면 반드시 땅의 기운을 손상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태조이래 대궐에 높은 집을 짓지 않으며 민가에 이르기까지 이를 완전히 금지하였습니다." 라는 기사가 있다.

건축의 자리앉음새에서 ​자연과의 적합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건물의 유기적인 배치인데, 군위 인각사의 무무당 낙성때, 목은 이색은 無無堂 추가 건축으로 가람 배치가 좌우 균형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무무당은 없을 무가 두 개를 겹쳐쓰여 '없고 없다'는 뜻도 되지만  '없는 게 없다'는 뜻도 된다. 어느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는데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던 지관스님은 "없고 없는 것이 없는 게 없는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궁궐이란 왕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그 시대 문화능력을 대표한다. 궁궐건축에는 사찰이나 민가에서 따라올 수 업 웅장함과 화려함이 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儉而不褸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 라고 말했다. 이 건축 정신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궁궐건축에 대한 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사실상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의 미학이고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이 아름다운 미학은 궁궐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데,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데 이 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시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간직해야 할 한국인의 미학이다.

 

[출처] 眼目 / 儉而不褸 華而不侈-한국건축의 미학/ 유홍준 (경향신문 2016.3.1)|작성자 청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