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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역사저널

청주문화원 역사문화탐방 '청주를 날다'(18.4/28,토)

by 박카쓰 2018. 4. 29.

청주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역사문화답사프로그램 '청주를 거닐다’에 참가합니다. 오늘은 1차답사로 주제는 '노블리스오블리제, 어떻게 살 것인가' 기암서원→영조대왕태실→쌍천서원→신채호사당→묵정영당→구봉영당, 신형호고가→신규식생가→계산리5층석탑→신홍식묘소

 

 

맨처음 찾아간 곳은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기암서원

1699년(숙종 2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강백년(姜柏年)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오창면 기암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706년에 오숙(吳熽)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4년 후손들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이곳에서 제례를 지내고...

 

 

 

싱그러운 햇살에 신록이 우거진 숲속으로 영조 태실을 찾아갑니다.

 

 

 

답사를 하며 운동도 겸하고... ㅎㅎ 

 

 

 

박상일문화원장이 태실문화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하십니다.

 

 

 

영조대왕 태실...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쌍천서원을 찾아갑니다.

1695년(숙종 21) 신식(申湜, 1551~1623)을 배향하고 세운 서원이다. 1871년(고종 8)에 철폐된 것을 1915년 유림에서 복설하였고, 1989년에 고령신씨 문중에서 다시 세운 뒤 영정을 봉안하였다

 

 

 

이곳에서 쭈꾸미 비빕밥을 먹고...

 

얼마전 찾았던 단재사당및 묘소를 또 찾아왔습니다.

 

강민식박사님께서 단재선생의 일생을 말해줍니다. 언론인,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이외에

그가 아너키스트, 무정부주의자로 사회주의 사상도 있었군요.

 

아나키스트 [anarchist개인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 부정하고 개인 자유 평등, 정의, 형제애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 가진 사람

 

 

 

 

 

오늘 고령신씨, 보성오씨 문중에 대해 많이 공부하네요.

우리도 뼈대(?)있는 밀양박씨 규정공파 자손...ㅎㅎ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찾았던 관정리...

 

 

 

그 앞에 이런 효자정문이 있다는 걸 몰랐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이렇게 효자가 되는 것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군요.

단지수혈이라?

효자가 되려고 손가락을 잘라 부모님께 해드렸다니...ㅠㅠ

 

 

 

 

고령신씨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곳은 두곳

 

묵정영당

보한재(保閒齋) 신숙주(申叔舟; 1414~1475)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영당.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

1888년(고종 25)에 창건되었는데 영정은 영조 때 원본을 모사(模寫)한 것

 

구봉영당

가덕면 인차리(仁次里)에 있는 조선시대 영당.

1895년(고종 32)에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영당

 

 

 

 

신형호 고가를 찾았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48 호로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에 있다. 이 고가는 독립운동가 신형호(1902-1946)의 생가이다. 조선말 고종18년(1881)에 지은 집으로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가옥이다. 본래 사랑채 곡간채 마고등이 있었는데 신정식이 거주할 때 의병의 숙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고 지금은 안채만 남아있다. 또한  이집은 민족교육의 목적으로 창설된 대활단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투사 신규식의 묘소를 찾아갔다. 신규식의 옛 묘소, 지금은 국립현충원으로 옮겨가고 부인의 묘만 남았단다. 그리고 신규식의 생가는 어찌나 초라한 지 이곳에 차마 그 사진을 올릴 수가 없다.

 

신규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사악을 배격하는 글을 써서 학우들을 독려하는 일을 도모했다. 한일합병 후 중국에서 교민들의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한편, 한국인과 중국인의 협력에 힘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이때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눈의 시신경이 망가져 애꾸가 되자, 흘겨본다는 뜻으로서 예관이라 불렀다.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이름을 정으로 바꾸고, 독립운동 및 교민들의 상부상조를 위한 동제사 조직, 박달학원 설립 등 한국 독립운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1919년 여운형·선우혁 등과 함께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정부 개편 문제를 둘러싼 내각의 분열, 태평양회의의 실패 등의 이유로 사퇴하고 단식하다가 43세로 생을 마감했다.

 

 

 

 

가덕면 계산리에 있는 5층석탑을 또 찾아갔다.

 

 

 

이번 답사팀...이 넓은 잔디밭에 앉아 즉석 공연이 이어지네.

호디기 박사님의 피리 솜씨

 

 

 

한 회원님의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하라'

함께 불러보며 참 흥겨운 시간이었네요. ㅎㅎ

 

 

 

 

뒤늦게 가수에 등단하신 회원님의 '천년사랑 직지(?)'

열창~ 79세에 참 대단한 삶입니다.

 

 

 

이제 휴식이 끝나고 박원장의 역사 강의가 이어지네.

이 오층석탑은...

보물 제511호 고려중기때 세워진 걸로 보이고 높이 5.9m. 석탑은 ‘말미장터’라고 불리는 마을의 남쪽에 있는 언덕의 밭에 있는데, 상태로 보아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상륜부(相輪部)는 남아 있지 않고, 받침돌의 덮개돌 일부와 2층 지붕돌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을 뿐 각 부분이 대체로 완전한 상태이다.

 

 

 

청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가덕면 면사무소 옆에 있는 신흥식 선생의 묘를 보네. 동오 신흥식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으로 가덕면 인차리 출신

 

오늘 인당선생님은 강릉으로 강릉단오제 서예심사하러 가고

박카스는 청주문화원 역사문화 탐방하며 참 즐거웠네요.

 

 

 

오늘 역사문화탐방에 수고하신 박상일 문화원장님, 강민식 문화해설사님, 문화원 과장님께 감사드리고

다음달 12일(토)에는 경기도 여주로 간다구요?

참 잘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