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1일(금) 08:00 청주문화원과 청주학 연구원이 주관하는 청주성 탈환 425주년 기념 2017 청주읍성축제
'청주성 전적지 답사' 의병의 길을 따라서...라는 테마를 가지고 역사탐방에서 나섰다. 2017년 9월2~3일 열리는 읍성축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청주읍성 탈환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청주 읍성 탈환을 이끌었던 의병장 조헌장군과 청주성 전투와 관련된 영규대사, 박춘무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가본다.
마침 버스 옆자리는 고딩,대학친구인 이병*, 반갑다 친구야!
그리고 예전 함께 근무했던 조항*형님, 김영*박사님도 함께하네.
우리를 실은 버스는 세종를 지나 공주군 갑사입구에 다다른다.
계룡면 면사무소 앞에 있는 영규대사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영규대사를 기리는 유적지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뒤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천련암(天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수백 명을 규합하였는데, 이때 승병을 조직한 것은 영규가 최초로서 전국에서 승병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의병승장기허당영규대사지묘...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을 점령한 왜군을 공격한 영규는 다시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힘을 합쳐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8월 18일 조헌과 함께 금산성 전투에서 최후까지 왜군과 맞서 호남 침공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부상을 입고 그 해 8월 20일 현재의 비각이 있는 자리에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고 전한다.
금산 칠백의총...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 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옥천읍보건소 앞 미가(맛집)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이지당을 찾았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광무 5년(1901)에 옥천의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인근 안남면 도농리에는 충북도기념물 14호인 그의 묘소 '옥천 조헌 묘소'와 충북도 유형문화재 183호인 '옥천 조헌신도비'가 있다.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조헌 신도비...조헌의 생애를 비롯하여 금산 전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적고 있다.
조헌 묘소를 찾았다.
왼쪽은 제를 모시는 표충사, 오른쪽은 영모재(재실)
무척 더운 날씨...계단을 오르니 등에 땀이 주르륵...
하지만 조헌선생의 우국충절을 생각하면 이따위 더위쯤이야...
조선 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중봉 조헌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국했다.
열심히 선생의 발자취를 뒤짚어 본다.
후율당은 의병장 조헌 선생이 1588년(선조21년) 안내면 용촌리에 지은 서실로 1864년(고종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현재의 모습은 1977년 중수(重修)한 것으로 후율당 안에는 본당과 조헌 선생의 아들 완기의 효자정문이 있다. 스승인 율곡 이이의 학덕을 기리고 배운다는 뜻으로 후율(後栗)이라 스스로 부르기도 한 인물이다.
표충사...
마지막 코스로 민충사
민충사(愍忠祠)는 충청북도 청주시 비하동 주봉마을에 위치한 사당이다. 2001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도회(儒道會)가 주축이 되어 건립한 사우로서 임진왜란 때 청주성 탈환에 공이 큰 박춘무, 박춘번(박춘무의 동생), 박동명, 박홍원, 이시발, 한혁, 정순년, 민여함, 칠백의용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민충사'의 민은 박춘무의 시호 민양공(愍襄公)의 첫 자에서, 충자는 선봉장이었던 아들 박동명의 시호 충경공(忠景公)과 종사관이었던 이시발의 시호 충익공(忠翼公)의 첫 자에서 딴 것이다.
청주시내에서 송상현 충렬사로 가기 전 비하동 부모산 남쪽 주봉마을 주봉마을...
임진왜란 당시 7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청주성을 탈환한 박춘무를 비롯한 청주의 병사들의 신위를 모신 민충사가 있다. 당시 청주성 탈환은 관군보다 충북 옥천의 조헌, 공주의 영규대사 그리고 청주의 박춘무가 모집한 의승병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전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투였다. 이 사당은 2001년 순천 박씨 문중에서 주관이 되어 건립한 것으로, 이곳에는 민양공 박춘무를 비롯하여 박춘번, 박동명, 이시발, 한혁 등 당시 청주출신 의병들과 이름없는 칠백의용사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청주성 탈환일인 9월 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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