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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모음/불교관련

진정한 보시, 진정한 사랑이란...

by 박카쓰 2017. 6. 8.


오늘 불교대 수업에서는 법륜스님이 진정한 보시를 말씀하신다.

과연 진정한 보시란 뭘까?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보시(布施) 라 함은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중생구제를 목표로 하는 이타정신의 극치이다.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사랑에도 온도의 차이가 있으며 욕구의 차이가 있다.


설악산을 사랑한다?

神을 사랑한다?

사람을 사랑하다?

이 세가지중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설악산을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신이나 힐링에 좋다며 산을 찾지만

실제로 산을 사랑하는 이유는 늘 변함없는 산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설악산이 그리 좋아 그렇게 찾아가면서도  

설악산이 우리에게 뭔가 해주기를 기대조차 하지않는다.

이것이 바로 조건없이 남에게 베푸는 진정한 보시인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설악산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神을 사랑한다?

하느님, 부처님을 사랑한다고 두손모아 빌며 은근히 소원을 빌고 있다. 

즐거운 일이 생길때면 신에게 감사드리지만 불행한 일이 겹쳐올때면 

이렇게 많이 기도했는데도 기도 발이 받지않는다며 改宗을 하고

복전을 올렸는데도 효험이 없다며 이절 저절을 찾아다니며

내가 바라는 신은 도대체 언제 찾아올거야 푸념을 한다.


자기 뜻대로 되면 믿고 자기 뜻대로 되지않으면 안믿는다면

이는 진정한 사랑이나 진정한 보시라 할 수 없다.



하물며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는 한없이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부부가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사랑을 나누며 평생을 살아하지만 정말로 조건없이 사랑하는가?

내가 좀 더 잘해주면 은근히 집사람도 내게 잘해주기를 바라지 않는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베푼다하지만 

이 다음이라도 조그만큼의 효도조차 기대하지않는가?

가족이 이럴지언데 하물며 남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의 욕구가 그 사랑속에 들어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어떤 신도들은 길거리 낯선 사람들에게도 전도를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불자들은 남에게 중생을 구제하는 傳法을 하지않으려한다.

이게 과연 무슨 연유에서 그럴까?


기독교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같다.

예를 들어 장례식을 보라.

신도들이 함께 슬퍼해주고 내게도 닥칠 죽음에 대한 보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찾는 건아닌가?

어떤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法은 좋은데 생활으로서는 안된다"

카톨릭에 적을 두고 불법을 공부하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욕구의 문제이다






정리하며...


물이 철철 넘치는 우물에서 남에게 물 한바가지를 퍼줄때

우리는 어차피 저 물은 내것도 아니니 아낌없이 퍼준다. 

물 한바가지 퍼주며 남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도 남에게 보시를 할때는 그런 마음으로 해보라.

재보시이든 뭔 보시이든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 

조건없이 베풀때 그것이 진정한 보시인 것이다.


보왕삼매론에도 이 보시가 나온다.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려라"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