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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My Essay

6월이면 도종환님의 시 '접시꽃당신'이 생각납니다

by 박카쓰 2023. 6. 15.

2017년 포스팅했는데 요즘 이곳저곳에 피어나는 접시꽃을 보며 도종환님의 시 '접시꽃당신'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암투병중인 아내를 생각하며 쓴 이 詩...읽을때마다 그 아픔에 눈물이 나며 정말로 아내에게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도 해봅니다.

 

 

탈렌트 이덕화님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나보다 집사람이 도종환님과 그의 詩를 더 좋아합니다. 오죽하면 집사람이 그리는 문인화 畵題의 대부분이 도종환님의 시입니다. 언제 도시인님의 시를 모아 작품전을 내놓겠다고 했지요.

 

 그 결실이 언젠가는 펼쳐질 듯합니다. 그때면 효산선생님도 초청하여 도종환님의 시를 읊게하고 싶습니다. 그 선생님은 도종환님의 시만 100편정도는 암송하고 다닙니다.